[인터뷰 in & out] 박철언 “YS는 아직도 백마 타고온 천사인가”
입력 2011-08-19 01:37
박철언(69) 전 의원은 2000년 4월 제16대 총선 때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 패한 뒤 정계를 떠나 오랫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노태우 정권에서 ‘6공 황태자’로 불리며 단골 뉴스메이커 역할을 했던 그였지만 자민련 탈당을 마지막으로 뉴스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는 2001년 변호사 개업을 한 이래 올해로 11년째 조용히 무료 법률상담 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시인으로 변신해 얼마 전 두 번째 자작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다. 그런 그가 최근 다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주 회고록을 출간해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3000억원’ 관련 의혹을 폭로하자 언론과 정치권의 눈길은 곧바로 박 전 의원의 입에 쏠렸다. 노 전 대통령 밑에서 실세 정무장관 등으로 일했던 그는 일부 언론과의 통화에서 “회고록 내용은 100% 진실이다. 두 분(노·김 전 대통령) 사이의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도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의원은 YS 비자금의 진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YS에 대한 해묵은 감정에서 비롯된 정치 공세는 아닐까?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박 전 의원의 사무실을 18일 찾아갔다. 대면 인터뷰를 극구 거부하는 그에게 “이번에 낸 시집 얘기를 듣고 싶다”고 설득해 일단 만남을 성사시켰다. 시집과 근황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다 YS 대선자금 얘기를 꺼내자 그는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YS는 “그 사람(노 전 대통령) 지금 어떤 상태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이고, YS의 아들인 김현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사실관계가 의심스럽다. 그런 자금은 당으로 가지, 대선 후보가 개인적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증언한다는 심정으로 20년간 참았던 얘기를 쓴 것이다. 공소시효도 다 지난 마당이니 YS도 아주 담백하게, 자기가 대선 치르느라 돈을 받아 썼고 남은 것은 어떻게 했다고 사실대로 시인해야 한다. 그리고 뒤늦게 밝히게 돼 국민들께 송구스럽다고 말씀하고 마무리하는 게 옳다고 본다.”
박 전 의원은 1990년 3당 합당 과정에서 본인이 직접 YS에게 비자금 ‘40억원+α’를 몇 차례에 걸쳐 전달한 사실이 있다고 이미 6년 전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대선자금의 경우는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 정확한 전달 과정은 모른다고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기업인 등 25명으로부터 대선자금 1010억원을 걷었다는 내용이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나온다. YS만 문제 삼는 까닭은.
“통치자금 문제는 사실 우리 현대사의 여러 대통령 시대에 일종의 관례처럼 이어져온 측면이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과 정치 현장 속에서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렇지만 다른 대통령들 경우에는 후임이 정치보복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았는데, 유독 YS는 스스로 백마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을 철저하게 매도했다. 실제로는 3000억원의 대선자금을 받고도 두 사람을 감옥에 보내고 이등병으로 강등시켰다. 나한테 ‘6공 황태자’라고 하는데, 사실 6공 황태자로 가장 많은 것을 누린 사람은 대통령까지 된 YS다. 그런 YS가 자신은 한 푼도 받은 일이 없다고 한다. 장기투병 중인 노 전 대통령에게 문병 한 번 가지 않았다. 같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같이 인생의 종말을 앞두고 있는 분으로서 문병은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2000년에 나온 ‘김영삼 회고록-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을 다시 찾아봤는데 비자금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은 위선과 가면의 탈을 벗어야 한다. 역사와 국민 앞에 서서 바르게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의원이나 YS 정권 때 감옥살이를 한 구원(舊怨)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노태우 회고록은 사실을 사실대로 증언한 것이다. 이제 와서 우리가 YS를 폄하하기 위해 그런 회고록을 발간한 게 아니다. 회고록에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낸 얘기가 어디 있느냐.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참모들 가운데 다시 정치하겠다는 사람은 내가 알기에 한 사람도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YS에 대한 감정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사자들의 회고록이 아닌, 현장 기자들이 1996년에 쓴 정치비화 ‘김영삼의 사람들’(성기철·박정태 엮음)을 보면 박 전 의원과 YS의 갈등 관계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3당 합당 직후 박 전 의원에게 “내가 대통령 5년밖에 더 하겠는가. 그 후에 합심해서 당신을 키워주겠다”고 했던 YS는 계속된 헤게모니 다툼 끝에 “위도 아래도 없는 민자당의 기강을 바로잡고 당풍을 쇄신하겠다”며 박 전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박 전 의원은 “3당 합당 과정에서 있었던 일 등에 대해 내가 진실을 얘기하면 YS의 정치생명은 하루아침에 끝날 것”이라고 반격했지만 결국 정무장관 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20여년을 가로지르는 질긴 악연 끝에 이번엔 박 전 의원이 YS에게 창을 겨눈 모양새다.
박 전 의원은 돌연 기자에게 “이른바 ‘YS 키즈(kids)’ 중에 YS의 은총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글쎄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얼마 전에 YS를 예방해서 ‘저희들은 다 YS 키즈’라고 하기는 했습니다만…”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언론도 문제다. 홍 검사(박 전 의원은 홍 대표를 아직도 홍 검사라고 지칭했다)를 계속 ‘모래시계 검사’라고 칭하는데, 소신대로 권력에 대항해야 모래시계 검사 아니냐. YS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나를 구속하고 옥살이시킨 게 무슨 모래시계 검사냐. 정반대로 가장 권력지향적인 검사였다. 허 참, 내가 기가 차서….”
박 전 의원은 홍 대표 이력을 설명하는 언론 보도에 매번 ‘6공 황태자 박철언을 구속시킨 모래시계 검사’라고 나오는 데 대해 울분을 토로했다. 다 지난 일인데 YS나 홍 대표와 화해할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나는 화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 만나자고 연락해 온 적은 없다. YS는 내가 감옥에서 나온 이래 우연히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없고, 홍 검사는 국회에서 가끔 봤을 때 그냥 인사를 나눈 정도다.”
박 전 의원은 YS 대선자금에 대한 대화를 피하고 싶어 했다. 기자에게 여러 차례 “그런 얘긴 그만 물어보라”고 주문했다. 자신의 발언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 걸 경계하는 눈치였다. 화제를 그가 최근 출간한 시집으로 돌렸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계기 역시 YS와 관련이 있다. 그는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돼 감옥에 있던 시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에 몰두했다. 그가 쓴 ‘감옥의 국화꽃밭’ ‘눈 내린 새벽’ ‘민들레꽃’ 등 세 편의 시를 우연히 읽게 된 조병화, 박재삼 등 몇몇 원로 시인이 1995년 월간 ‘순수문학’을 통해 박 전 의원을 시인으로 추천, 등단시켰다. 박 전 의원은 등단 소감에서 “쥐틀 같은 한 평의 철창우리 속에 갇혀 있어야 했던 1년 4개월. 개구멍으로 넣어주는 음식물로 연명하면서 짐승처럼 보내야 했던 그 외롭고 힘든 시간들…”이라고 했다.
-7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제목이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다.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떠나면서 시와 더불어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내가 5·6공에서 남북 비밀회담에 42차례 나서고 북방외교 실무 책임자로 일했기 때문에 요즘도 여기저기서 특강 요청을 많이 받는다. 강의를 하면서 청중들에게 꼭 좋은 시 몇 편을 소개하며 감흥을 함께 나눈다. 지난달 26일에는 자유지성 300인회(공동대표 여상환) 초청으로 ‘한반도 주변정세와 대북정책’을 테마로 강연을 했는데, 그때 미국 시인 롱펠로의 ‘인생찬가’, 원로시인 박두진의 ‘해’, 이제 40대 초반인 문태준의 ‘백년’, 그리고 내 자작시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를 낭독하고 해설도 했다. 평소 시집을 많이 본다. 요즘은 작고한 장영희 전 교수의 ‘영미시 산책’을 읽고 있다.”
-시집에 노모(老母)에 대한 시도 여러 편 담겨 있다.
“대구에 계신 어머니가 올해 96세다. 상당히 건강하셨는데 얼마 전에 넘어져서 대퇴부 골절상을 입어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에는 대구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일요일에 서울로 돌아온다. 내 시집을 가져가서 어머니한테 읽어드리기도 한다.”
-전직 장관과 국회의원, 변호사, 이사장, 시인 등 여러 직함이 있는데 어떤 직함이 가장 좋은가.
“시인이 가장 좋다. 문인들 모임에 가끔 나가는데 거기서 시인이라고 불러준다. 허허.”
그는 2006년 ‘작은 등불 하나’로 제10회 서포 김만중 문학상 시 부문 대상을 받았고, 2008년에는 제1회 순수문학 작가상을 수상했다.
정치를 재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잘라 말했다. “정치나 공직에 다시 나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
YS 대선자금을 둘러싼 그의 강경한 목소리에 정치 재개를 위한 포석이 깔려 있는 건 아닐 수 있다. 그의 주장대로 진실을 촉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응어리 진 감정을 분출하는 차원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노 전 대통령 측이 갖고 있다는 녹음테이프 및 녹취록 공개에 박 전 의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YS 측이 침묵으로 일관할지, 작심하고 반박하고 나설지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