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앉음? 편견을 깨라

입력 2011-08-18 18:00


의자의 재발견/김상규 지음/세미콜론

인공물 중 인체를 가장 오래, 넓게 지탱해주는 사물 중 하나. 의자이다. 당신이 지금 앉아있거나 잠시 후 앉게 될 의자. 나무, 가죽,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소재도 제각각이고 받침대, 등판, 다리가 매달린 모양새도 다양하다. 사무실과 학교, 길거리, 찻집, 거실에서 저마다 다른 용도로 쓰이는 의자.

‘의자의 재발견’은 엉덩이 밑에 깔려 주목 한번 못 받았던 미지의 사물에 대해 말한다. 의자 얘기? 재밌을까? 의심했던 게 미안해질 만큼 의자 디자인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저자는 의자 디자이너인 김상규 서울과학기술대학 공업디자인학과 교수.

의자, 앉을 권리?

‘의자=앉기 위한 물건’은 단연코 편견이다. 일어섬과 앉음 사이에 존재하는 의자도 있다. 카스틸리오니 형제의 ‘셀라’①는 반구형 받침대 위에 안장을 얹었다. 엉덩이를 대면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가 나온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온몸을 긴장해야 하니 ‘안락하지 않은’ 의자다.

팽이 모양 ‘스펀’도 있다. 사람이 앉으면 무게 중심에 따라 의자가 팽그르르 돈다. 이건 ‘앉을 수 없어서’ 즐거운 의자이다. ‘비어서’ 의미 있는 의자라면 지난해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 등장한 수상자 류샤오보의 빈 의자. 그 의자에 앉을 권리를 가진 한 사람은 그 시간 중국 감옥에 갇혀 있었다.

감상과 기능이 뒤섞인 의자 얘기도 흥미롭다. 19세기 미국 저택 복도에 놓인 의자는 등받이만 화려하고 바닥은 딱딱한 이중 구조다. 예쁘고 불편한 의자는 의도된 것이었다. 주인은 감상만 하고 쓰는 건 하인 몫이었기 때문이다.

의자는 권한이나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권좌(權座)와 체어맨(chairman·의장)이라는 단어가 나온 이유다. 한 대학 광고 속 의자는 취업의 다른 말로 쓰였다. 이때 의자는 회전의자여야 마땅하다. 괜찮은 사무직이라면 회전의자에 앉아야 하니까. 드라마 ‘시크릿 가든’ 속 김주원 네 집 ‘플랩 소파’②와 포장마차의 플라스틱 간이 의자. 여기서 두 의자가 보여주는 건 사회적 위계질서이다.

의자 다리 줄이기

‘의자 다리는 네 개’라는 고정관념은 끊임없이 도전받았다. 아르네 야콥센의 다리 세 개짜리 ‘앤트(ant) 체어’는 실패했지만, 마르셀 브로이어의 두 다리 의자 ‘B32’③는 의자의 고전이 됐다. 다리 수를 줄이되 지면과 닿는 면을 넓혀 안정감을 확보한 게 주효했다. 다리 하나짜리로는 에로 사리넨의 ‘튤립의자’④가 성공작이다. 다리 하나가 마치 건물 기둥처럼 의자 전체를 받치는 구조다. 베르너 팬톤의 ‘팬톤 의자’와 헤리트 리트벨트의 ‘지그재그 의자’⑤처럼 다리라는 개념을 뒤흔든 혁신적 작품도 있다.

혹시 얼마나 잘 겹쳐지는지가 의자의 가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아는지. 화물선 컨테이너에 몇 개의 의자를 포개 넣을 수 있느냐는 것이 의자 가격을 좌우한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한껏 쌓아올릴 수 있는 ‘루이20’⑥은 미학적 가치만이 아니라 경제적 효용도 큰 셈이다.

의자 다리는 왜 4개인가. 장 그노스의 ‘인간과 사물의 기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단다. “의자가 다리를 하나 더 간절히 원한 건 개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의자는 개를 꿈꾸었다.” 의자가 개만큼이나 인간과 가깝다는 얘기인가보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