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예수님의 모든 결론- 깨달음과 행함

입력 2011-08-18 17:46


마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여러 비유가 기록돼 있어 ‘비유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씨 뿌리기 비유를 비롯해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숨겨진 보화와 진주의 비유 등 각종 비유가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비유를 베푸신 후 제자들을 따로 불러 비유의 의미를 상세히 풀어주십니다.

이렇게 비유를 다 가르치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마 13:51) 제자들은 입을 모아 “예” 하고 대답합니다. 비유를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숨은 의미까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았느냐?” 하는 질문은 비유장의 결론으로 타당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봅시다. 처음에 질문을 던진 율법학자는 지식이 많고 똑똑한 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행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눅 10:28)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눅 10:37) 지식만 추구하는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은 ‘행함’이라는 해법을 제시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는 ‘행함’이 결론입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멋진 생각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깨달았느냐?” 하는 질문과 “이를 행하라”는 명령이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 적용돼야 할 결론이라는 생각입니다. 당장 성경을 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읽은 다음 두 가지 결론을 붙여 읽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을 읽은 다음에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는 질문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도 가서 이같이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는 명령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가슴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말씀에 저 자신이 압도되어 숨이 막힐 듯했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 18:22)는 말씀을 읽고 역시 두 결론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옹졸한 제 마음이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읽은 다음에 이 두 가지의 결론을 붙여 읽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한번 해 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뜨거운 불덩어리처럼 여러분의 가슴에 다가오고, 예리한 창끝처럼 여러분의 심령을 찌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깨달음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은 후에는 반드시 행함이 뒤따라야 합니다. ‘깨닫는 것(쉬미에미)’과 ‘행하는 것(포이에오)’은 찬송가 가사의 후렴처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에 따라오는 결론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달았는가’ ‘우리가 그 말씀대로 행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질 때 예수님의 가르침은 살아 있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옵니다.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