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사회서 너와 나의 영혼 찾기…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펴낸 심보선

입력 2011-08-17 18:11


시인 심보선(41).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그가 서울대 사회학과와 대학원, 그리고 미국 컬럼비아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돌아와 등단 14년 만인 2008년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냈을 때 문단은 깊은 철학적 사유와 전범 없는 독창성에 탄복했다.

그가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우선 ‘시인의 말’을 읽어본다. “시여, 너는 내게 단 한 번 물었는데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구나.” 시와 시인의 관계를 한 번의 질문과 영원한 대답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문장은 이번 시집을 여는 키워드다. 생에 깃든 일회성과 영원성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찾아가는 시인이 심보선인 것이다.

“나는 즐긴다/ 장례식장의 커피처럼 무겁고 은은한 의문들을:/ 누군가를 정성 들여 쓰다듬을 때/ 그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서글플까/ 언제나 누군가를 환영할 준비가 된 고독은 가짜 고독일까/ 일촉즉발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삶은/ 전체적으로 왜 지루할까”(‘의문들’ 부분)

의문과 호기심은 홀로 있을 때는 얻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라는 상대방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것이 의문과 호기심인 것이다. 시도 홀로 얻어지지 않는다. 늘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수반해야 얻어지는 것이 시이다. 지난 3년간 시인의 발자취는 용산 참사 현장으로, 홍익대 두리반으로, 명동 제3개발구역 카페 마리로, 가볍고 자발적으로 옮겨 다녔다. 지난달엔 부산 한진중공업 내 85호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는 김진숙씨를 위한 한국작가회의의 희망버스 참가명단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나, 그들과 나, 세상과 나라는 관계 속에서 지탱된다는 사회학적 원리를 그는 문학으로 실천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회학은 고스란히 그의 문학이 되고 있다. 그가 “불현듯 하나의 영혼을 넘쳐/ 다른 영혼으로 흘러들어간 무모한 책임감에 대하여”(‘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이라며 질문하고 답하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과 인간은 도리 없이/ 도리 없이 끌어안는다”(‘지금 여기’)라는 절대명제가 시인의 가슴에 별처럼 돋아나 빛나고 있는 것이다. 내 영혼이 타인의 영혼에 손을 내밀어 연대를 표시하는 것. 그러나 영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심보선은 어떤 순간에 영혼을 보는 것일까.

“침묵은 나의 잘못, 그것이 나쁘고/ 슬프다는 것도 잘 안다/ 영혼은 오로지 한 순간에만 눈에 띈다는 사실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새처럼”(‘영혼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부분)

심보선은 이번 시집에서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시인은 연모하는 대상이자 부재하는 연인인 ‘문디(mundi)’를 호출하기도 하는데 그가 호출하는 것 역시 문디의 영혼이다.

“나의 문디여,/ 고향을 상실한 이방인으로서 나는 너에게 말하련다/ 내가 그나마 핏기가 도는 입술을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방금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내 정수리를 스쳐 지나갔을 때/ 나는 그것이 한 점 먹구름이었음을 짐짓 무시하고/ 내게 신묘한 영감이 절묘한 시간에 임했노라고 너에게 말하련다”(‘mundi에게’ 부분)

심보선은 파편화된 개인들로 메말라버린 우리 사회에 나의 영혼과 타인의 영혼이 겹치는 영혼의 제국을 건설하는 중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