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야수·정글”… 국회서 난타당한 대기업 행태

입력 2011-08-17 23:19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17일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대·중소기업 상생방안을 논의했다. 여야 의원들은 허 회장을 상대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 횡포를 강하게 질타하며 환골탈태를 촉구했다. 허 회장은 지난 6월 말 개최된 공청회에 불참했다가 정치권의 강한 비난을 받았던 점 등을 의식한 듯 공청회 내내 몸을 낮췄다.

◇“전경련, 차라리 해체하라”=공청회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불공정 하도급, 중소기업 업종침해 등 동반성장을 가로막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 이익단체로 전락한 전경련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전경련은 개발시대의 이익단체 성격을 탈피해야 한다”며 “발전적으로 해체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는 싱크탱크를 설립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도 “전경련을 해체하는 것이 대기업과 국민경제를 위해 낫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허 회장은 “좋은 의견이다. 전경련이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전경련이 정치권의 반(反)대기업 정서에 대한 대응책으로 주요 대기업별로 접촉할 정치인을 배정한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는 “전경련이 전국 경제인 로비연합회로 전락했다”는 질책이 나왔다. 허 회장은 “이런 일이 보도된 것에 대해 사과한다. 조사해서 사실이면 대국민사과 하겠다”고 해명했다.

◇“과도한 업종침범 반성”=한나라당 이화수 의원은 “30대 재벌 계열사는 2006년 500개에서 지금 1080개로 늘었다”며 “재벌들이 유통·식품·학원 등 업종까지 침범해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들었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도 “대기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해 심지어 떡집, 어묵가게까지 진출하고 있다”며 “대기업의 과도한 영역 침범은 경제의 선순환 구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허 회장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렇게 한 측면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업종도 있다. 앞으로 반성하고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자중자애하자는 얘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도 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 횡포를 막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은 영구 제명됐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 파산에 이를 정도로 배상하는 기업이 나오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회장은 “(대기업이) 대단히 노력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일부 회사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고 있다. 페널티를 충분히 줘야 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질의 과정에서는 탐욕, 야수, 정글, 먹이사슬 등 대기업 행태를 비난하는 원색적 단어가 등장했고, 경제단체장들은 부자 증세를 거론한 미국의 부호 워런 버핏을 본받아야 한다는 쓴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조경태 의원은 “일본 기업가 중에 ‘배부른 사자는 더 이상 사냥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기업가는 국민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가 일본을 안 좋아해 그 기업가를 ‘왜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가 김영환 지식경제위원장으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신경전=경제단체장들은 대체로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지만,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확산되는 것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동반성장은 기업이 스스로 필요성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시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도화를 통해 일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고 기업 활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회장은 “동반성장 문제를 어느 한쪽에서만 보거나, 어느 한 부분이 지나치게 과대 포장돼 반(反)기업 정서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에 지나치게 규제적이거나 중소기업에 일방적인 특혜를 주는 약자보호형 지원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것은 보호육성이 아니다”며 “불합리한 제도 개선, 가이드라인 설정, 불공정거래 개선인데 중소기업의 힘만으로 안 되니 정부나 국회가 어느 정도 조정해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유통산업이 과점화될 경우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기업 기반 유통업체가 무분별하게 진출해 골목상권을 잠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최 장관은 “지경부 산하 공공기관 중 40%가 대기업과 구내식당 계약을 했다”고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지적하자 “잘 들여다보겠다”고 답했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일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뒤 유통·서비스업으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기영 권지혜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