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노경남 (2) 고교시절 새벽기도 참석하려 자취생활
입력 2011-08-17 21:04
1980년대 장흥읍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은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했다. ‘계명회’라는 이름 아래 모인 교회 학생회 멤버들은 장흥고, 장흥여고 학생회 임원과 흥사단 아카데미 임원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계명회가 주도하는 교회 행사에는 예배당이 비좁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고 많은 학생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주일예배부터 시작해 수요일 밤 예배까지 빠짐없이 출석했다. 그만큼 말씀에 목말라 있었고 성령의 존재에 갈급해 있었다. 예배에서 체험한 은혜의 말씀은 혼자 간직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전파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전도를 했고, 복음 전파를 위해 1, 2학년 때는 학년대표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글로 예수를 전하고 싶은 열망에 학교 교지 편집장도 맡았다. 예수에 미쳤다고 꾸지람을 치는 선생님도 계셨다.
새벽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새벽 첫차는 오전 5시30분에나 있었다. 머리를 짜낸 게 읍내에서 자취를 하는 거였다. “아버지, 제가 차멀미를 많이 하는 것 아시죠? 통학하는 데 너무 고통스러워요. 읍내에 방을 하나 구해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버스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인데 집을 떠나 생고생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절대 안 된다. 그것도 여자가.”
거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졸라대 읍내에서 자취를 해야 한다고 우겼다. “할머니 할아버지, 간곡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학교를 다니는데 멀미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요. 아버지를 설득해 주세요. 예?”
결국 아버지는 하늘같은 조부모님의 말씀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자취방을 얻고 처음 나간 새벽기도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성령 강림 함이라/ 정결한 맘 영원하도록 주의 거처 되겠네/ 주님 주시는 참된 평화가 내 맘속에 넘치네/ 주의 말씀에 거센 풍랑도 잠잠하게 되도다.”(새찬송가 182장)
그때부터 새벽예배는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자리 잡았다. 세례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4년 11월 추수감사주일 장흥읍교회에서 받았다. 그때 함께 세례를 받았던 김순희는 지금 필리핀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활동 중이다.
세례를 베풀어주신 박종욱 목사님은 세례문답 때 이런 당부를 하셨다. “평생 십일조 생활을 지키겠다는 믿음으로 살거라. 이제부턴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으므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단다.” “예, 알겠습니다. 목사님,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84년 계명회 11기 선교부장을 맡아 학생들만이 참여하는 철야기도회를 가졌다. 그때의 기도경험은 지금도 응답받는 기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매주 토요일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 복음을 전했다. 같은 해 장흥 지역 흥사단 아카데미 회장도 맡았다.
믿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전도와 기도에 모든 시간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신학공부를 결심했다.
“아버지, 대학 진학과 관련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정치나 법을 전공할 계획이지?” “저, 신학을 전공하고 싶습니다.” “뭐! 예수쟁이가 된 것도 못마땅한데 신학까지 한다고! 아예 호적을 파서 나가거라.” “아버지, 하나님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어이구, 종교는 취미생활로 갖는 게다. 너처럼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미쳐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놈은 없다. 집안에서 말썽부리지 말고 어서 집에서 나가거라!”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