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말씀이 육신이 된 이유
입력 2011-08-17 18:47
요한복음 1장 14절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로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계명을 주시고 이를 지키라고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 경고하고 교육도 했지만 그들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구약 시대를 보십시오. 많은 사사와 선지자가 등장하지만 이스라엘이 달라졌습니까? 매로 아프게 다스릴 때 순종하기도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셨습니다. 기적으로 말씀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을 여러 증거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귀가 아프게 듣고, 수 없는 기적을 예수님 곁에서 직접 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한 제자는 배신했고, 나머지는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그중에 의리 있다는 제자는 ‘나는 예수를 모른다’며 부인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 1:3)란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현실이 된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값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즉, 말한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말이 영향력을 상실한 시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별히 성경 말씀이 그렇습니다. 분명히 예전보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내용이나 표현들이 세련돼졌고, 음향기기들도 나날이 발전되고 있지만 이를 듣는 사람들의 삶 속 변화는 요원해 보입니다.
주님께서 재판받으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주님은 통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말이 안 통하는 악한 세대에 말씀보다는 차라리 침묵을 택하신 것입니다. 대신 몸으로 말씀을 대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백 마디의 ‘너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내 죄 대신 맞는 채찍 한 대가 더 효과적이란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이 안 통하는 인간에게 말 대신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악한 세대에게 보여줄 것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마 12:39)는 주님의 말씀 또한 몸으로 말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주님의 찢긴 몸이 바로 설교이시고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친히 오셔서 그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말씀을 살아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게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썩지 않은 밀알처럼 말씀이 삶이 되지 않고 그저 말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씀에 가치가 없어집니다. 또한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치지 못한 채, 남만 가르치려고 하니 말씀이 허무해져 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이 육이 되지 못하면 무지한 말이 되고 맙니다. 말로만 신앙을 이야기했던 욥의 친구는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남만 가르치려고 한다면 믿음은 그저 ‘무지한 학문’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행동이 없는 말씀은 가치가 없습니다. 말씀이 몸 되는 삶을 사십시오.
이동준 목사 (서울 은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