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길이 있다”… 여의도 다시 펴든 ‘冊정치’

입력 2011-08-16 18:34


‘여의도에서 책은 ○○다.’

요즘 여의도 정치권에서 ‘책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출간 붐이 치열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권 주자급은 돼야 나왔지만, 요즘은 초·재선을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책을 쏟아내고 있다. 겉으로는 책 전쟁이지만, 기실 들여다보면 공천 경쟁 및 총선 승리, 또는 대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다.

민주당 고위 당직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봐라. 2개월 전 출판된 ‘문재인의 운명’ 한 권으로 그의 정치적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했다. 여의도에서 책은 치열한 정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자 무기인 셈이다.

16일 현재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쓴 ‘자원을 경영하라’가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주변에서는 이 의원의 출간이 총선 공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 차기 국회에서도 자원외교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서울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민주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곧 나올 책으로 얼굴을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도 연말까지 출간 계획이 있는 여야 의원들이 줄잡아 30여명이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연말에 늘 해오던 정책설명회를 출판기념회 형식으로 바꿀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군소 정당의 정치인들에게 책은 대국민 접촉 수단이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전국 곳곳을 돌며 진행하고 있는 ‘이동당사’ 행사에서 자신의 책 사인회를 하고 있다. 원외인 유 대표에게 책 출간은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도 최근 출간한 ‘진보의 미래’라는 책으로 일종의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대권 주자들과 책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지지자들을 규합하거나 딱딱한 정치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다음 달 6일 펴낼 자전적 에세이에서 ‘인간 정몽준’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달 초 출간된 ‘박근혜 스타일’이라는 책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한나라당 박 전 대표를 수년간 지켜보며 쓴 이야기다. 한 친박계 의원은 “출간 이후 젊은층에게 어필하고 있어 고무된다”고 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 12일 휴가를 떠나며 필독서를 ‘더 나은 미래’, ‘10년 후의 미래’라고 공개해 이 문제에 빠져 있음을 내비쳤다.

최근 들어선 옛 정치인들의 책이 정치권을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 문제를 담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 여파가 지속되고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도 회고록을 준비 중이다. 총선과 대선 정국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책도 추가로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정치의 한 방식이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설 때 ‘권리를 상실한 노동자 비정규직’이라는 책을 주변에 뿌려 그의 생각의 일단을 엿보게 했다.

손병호 한장희 김나래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