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드라마 주인공이 잠적하다니
입력 2011-08-16 17:47
공영방송의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가 촬영을 거부한 채 해외로 떠나 방송이 결방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KBS 월화드라마 ‘스파이 명월’ 주인공 한예슬씨가 제작진과의 불화로 이틀간 촬영에 불참한 데 이어 미국행을 택했다. KBS는 앞으로 새로운 여주인공을 구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파행은 불가피해 보인다.
국내 방송계 초유의 일로 기록될 이번 사태는 드라마 제작환경의 부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긴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지상파 드라마는 국가공공재인 전파를 쓰는데도 방송사와 제작사, 연기자 모두 여기에 수반되는 공인의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가장 비난 받아야 할 주체는 물론 연기자 한씨다. 심경 정도만 밝혔을 뿐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아 촬영을 거부한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연기자가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예고도 없이 촬영현장을 떠난 것은 직업윤리의 실종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개별적인 인격체로서의 연기자 이전에 시청자와 만나기로 한 계약 당사자로서 극도로 무책임한 처신이다. “배우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촬영현장을 지켜야 한다”는 게 연기계의 금언이다.
이 참에 우리 드라마의 제작환경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KBS 드라마국장은 “한 연기자의 돌발행동을 다른 조건과 비교해 물타기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현재와 같은 환경을 정상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전작 드라마는 고사하고 쪽 대본이 날아다니고, 살인적인 스케줄에다 일주일에 90분짜리 드라마를 2편 찍는 상황을 어떻게 한국적 현실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번 한예슬 사태는 연기자와 제작자 모두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지고 있다. 연기자가 방송으로 인기를 얻어 CF 출연 등 개인적인 영달은 다 취한 뒤 시청자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방송계도 주먹구구식 환경을 탈피해 한류의 발신지답게 선진화된 제작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가일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