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웨이보 민주주의
입력 2011-08-16 17:54
“밤 10시쯤 대체기사를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 너무 화가 나서 결국 울고 말았다.” 중국 한 일간지 기자가 지난달 29일 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이다. ‘7·23 고속열차 추락 참사’ 일주일 특집을 만들던 중 당국이 보도를 통제하자 울분을 참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23일 밤늦은 시간에 소식통으로부터 고속철 참사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뉴스채널을 켰다. 세상은 평온했다. 하지만 웨이보는 달랐다. 처음 사고를 알린 것도, 당국의 엉터리 구조 작업을 지적한 것도, 원저우(溫州) 관료가 지역 변호사들에게 허락 없이 희생자 유가족과 접촉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을 폭로한 것도 모두 웨이보였다.
민심이 흉흉해지자 보도지침을 따르던 관영 언론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CCTV 앵커는 고속철 참사를 공개 비난했고 경제관찰보 등 일부 신문들은 당국의 보도통제를 거부한 채 특집판을 냈다. 대학교수 등 일부 지식인들은 정치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뿐인가. 사고 발생 닷새 만에 원저우를 찾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검은색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피해자 가족은 그럴 만하다 치자. 신화통신 등 대표적 관영 매체 기자마저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원 총리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질문을 해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를 두고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이번처럼 공공연히 정부를 비판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네티즌은 이에 대해 “웨이보는 ‘약하지(微博)’ 않다”고 말한다. 지난 6월말 현재 중국 내 네티즌은 4억8500만명. 중국인터넷정보센터가 조사한 결과다. 이 같은 네티즌 규모는 세계 1위에 해당한다. 이 중 휴대전화를 이용해 인터넷을 하는 사람만도 3억1800만명이나 된다. 웨이보 가입자는 1억9500만명이다.
이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웨이보에 글을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지난 고속철 참사에서 ‘웨이보 저널리즘’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중국 정부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외국 소셜미디어는 접속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이처럼 강력한 인터넷 검열 체제도 웨이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 웨이보를 폐쇄할 수도 있겠지만 네티즌의 엄청난 반발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웨이보가 중국 정부를 꼼짝 못하게 만든 건 지난 5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방중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위원장의 동선이 웨이보에 수시로 알려지자 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김 위원장이 국경을 넘기도 전 관례를 깨고 그의 방중 사실을 관영 언론에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웨이보 때문에 덮는 게 능사가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중국 지도부는 이제 새로운 환경에 맞는 통치 방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달 초 공산당 중앙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이 정부 각급 기관에 정보 공개를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은 바뀌고 있는 중국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고인민법원은 지난 13일 마침내 ‘정부정보공개 관련 재판규정’을 발표했다. ‘정부 정보공개 조례’가 이미 시행되고 있던 터에 이번에 사법적인 절차까지 완비된 것이다. 사실 이 규정은 지난해 말 최고인민법원 재판위원회가 통과시켜 놓고도 그동안 발표하지 않고 있었다. 고속철 참사 뒤 들끓었던 민심이 이러한 조치에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해 보인다. 이에 앞서 공업정보화부는 지난주 향후 3년 동안 광섬유 광대역 인터넷망 건설에 1500억 위안(25조5000억원 상당)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신규 광대역 인터넷 사용자수를 5000만명 이상 늘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사용 인구는 늘어나고 정부에 대한 감시의 눈길은 많아지는 현상을 누가 뒤집을 수 있을까. 중국에서 ‘웨이보 민주주의’는 이제 대세로 자리잡아 가는 것 같다. 궁금한 것은 단지 그 속도일 뿐이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