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인생 2막] “일 할 기회 얻어… 희망 없던 삶에 가슴이 설레요”

입력 2011-08-16 22:23


‘노령 지식인 사회참여사업’ 참여 이항선씨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기업은행에서 30여년간 근무, 지점장까지 지낸 이항선(65·서울 미아동)씨.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사태) 여파로 명예퇴직 후 10여년간 일 없이 지내왔던 이씨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지난달 초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보건복지부의 ‘노령 지식인 사회참여사업(앙코르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은퇴 후 삶에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다.

그는 1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는데 여러 교육으로 새로운 각오도 갖게 해 주고 현장 실습까지 하게 해 준 고마운 사업”이라고 했다. 노령 지식인 사회 참여사업은 고학력 전문직에 종사하던 은퇴 지식인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비영리 복지기관, 공익조직, 사회적 기업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에 제공하고 은퇴자에겐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고령 사회의 주요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다. 복지부가 베이비붐 세대(베이비부머)의 대량 조기 은퇴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신설한 ‘베이비부머 정책 기획단’이 내놓은 첫 번째 프로젝트다.

이씨는 베이비부머에 정확히 해당되진 않지만 50대 중반 이상 퇴직자(퇴직 예정자)로 자신의 지식과 경력을 사회에 환원할 의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모두 참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한달음에 신청했다.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비슷한 처지의 친구 6명도 함께 참가했고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초까지 30시간의 기본 교육과 사회 참여 분야에 대한 이해를 돕는 12시간의 전문 과정을 마쳤다.

이씨는 “은퇴 후 일반 구직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내 특기를 살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마름이 더 컸다”면서 “보람도 느끼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면 더욱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씨는 퇴직 후 개인 재무설계 회사에서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재무상담, 소상공인 지원센터 등에서 경영 상담 등 사회봉사 경험이 몇 차례 있었지만 단기간에 그쳐 정을 붙이기엔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노령 지식인 사회참여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실제 일해 보고 싶었던 비영리 기관에서 현장 실습을 한 것을 꼽았다. 그는 서울 충무로에 있는 사회연대은행에서 2주간 저소득층 대출 및 창업 지원에 대한 상담을 했다. 사회연대은행은 사회취약 계층에게 무보증 무담보 대출을 해 줘 자활을 돕는 기관이다. 이씨는 이곳에서 대출받아 실제 창업에 성공한 기업 7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경영 및 재무 노하우 등을 전수해 줬다. 이씨는 “은퇴 후에도 전문 분야를 살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큰 기쁨이고 보람”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봉사하며 남을 도우고 나 자신도 만족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 볼 계획”이라고 소망했다.

노령 지식인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수료하면 이후 참여기관 등과 협의해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이씨 또한 이달 23일 최종 평가와 함께 재취업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다만 재취업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지는 않지만 월 50만∼60만원의 보수가 따라 준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두 자녀를 분가시킨 후 아내(63)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는 그는 퇴직금으로 받은 2억6000만원을 자녀 결혼자금, 생계비 등으로 모두 썼다고 한다. 때문에 마땅한 벌이가 없어 지난해 서울 압구정동 집을 팔고 이사했다. 이씨는 “당장 생계가 어렵다거나 하진 않지만 앞으로 살날이 10년이 넘을 텐데, 손자 용돈 줄 정도라도 벌면서 사회에 좋은 일을 했으면 한다”면서 “모든 조기 은퇴자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