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노경남 (1) 웅변을 통해 선교 향한 비전에 눈 뜨다

입력 2011-08-16 17:40


내가 태어난 곳은 전남 장흥군 안양면이다. 유교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농촌마을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런 전형적인 씨족 마을이었다. 복음을 접하기 어려웠지만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세계로 인도해 주셨다.

부모님은 기독교 신앙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분들이었다. 아버지는 향교 지도자로 장흥 유림의 장을 지내실 정도로 유교 전통과 문화를 강조하셨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열린 생각과 눈높이 사상을 소유하셨다. 미군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셔서 그런지 아버지는 우리 5남매에게 자율과 책임을 가르치셨다. 매사에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사고도 심어 주셨다.

197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우리 아랫집의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혼한 안주인이 들어왔는데 그분이 독실한 믿음을 갖고 계셨다. 교회는 멀리 면소재지에 있었지만 그분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셨다. 어린 나이의 나는 그분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교회가 멀지만 철저한 신앙인인지라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니셨다. 나와 내 동생은 그분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됐다. 그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부터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생활은 원래 저렇게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주일 아침, 나는 아침식사를 하면서 TV에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님을 보게 됐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엔 지상파 정규 방송에서 조 목사님의 설교방송이 나왔다.

조 목사님의 표정과 말씀에서 나온 영적인 힘은 어린 나에게 큰 도전이 됐다. ‘나도 크면 저 목사님처럼 TV에서 설교할 정도로 유명한 지도자가 될 거야.’ 그때부터 기회가 닿는 대로 성공한 사람들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반장과 회장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남들 앞에 설 기회도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웅변은 말하는 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전교생 앞에 설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군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어린 시절 웅변을 경험한 것은 행운이었다. 교사, 학생, 학부모 앞에서 기독교 대안학교인 굿뉴스사관학교의 운영 철학을 분명하게 소개하는 말하기 훈련을 일찌감치 받았기 때문이다. 말하기 능력은 리더십 발휘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탁월한 웅변은 우리 학교의 운영철학 중 하나다. 굿뉴스사관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전교생이 반드시 스피치 콘테스트라는 것을 거친다. 이것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한국말과 영어로 다양한 주제를 발표할 뿐만 아니라 꿈과 비전을 펼치는 멋진 무대이다. 학교에서 영어토론 교육을 일찌감치 시작한 것도 어린 시절부터 웅변과 토론의 중요성을 체험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안양중학교를 졸업하고 장흥여고에 진학한 나는 자연스레 읍내에 있는 장흥읍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장흥읍교회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꿈을 보다 구체화하는 못자리판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약력=1966년 전남 장흥 출생, 숭실대학교 교육대학원, 카이스트 S+ 컨버전스AMP과정 졸업, 수도학원 부원장·정한학원 원장 역임, 부천 굿뉴스사관학교 교장, 재단법인 새생명교육재단 이사장. 저서 ‘축복의 혁명 태아부터’ ‘조이 조이(Joy Joy) 학습법’ 등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