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서영은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자기애에 비수 꽂는 ‘터닝’ 없이 주님 못 만나

입력 2011-08-16 20:58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가던 길 멈추고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인생길에서 접하는 행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최근 서울 방배동 신혜경 서강대 일본문화학과 교수 집에 10여명이 모였다. 신 교수를 비롯해 서울여대 이광자 총장,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가정문화원의 김영숙 원장과 남편인 두상달 장로, 지구촌교회 김동숙 권사, 건국대 중문과 장영백 교수, 크리스천 기업 엔데오의 남정복 회장 등. 그 외에 목회자와 문화인 등이 참여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3시간 넘게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한 여성작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작가는 서영은(69)씨.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고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 30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을 휩쓸었던 화제의 여성 작가다. 그가 지난해 펴낸 산티아고를 도보 순례한 책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울림을 주는 좋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날 모임은 서씨의 산티아고 순례와 관련한 이야기, 더 구체적으로는 그 길에서 만난 하나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마련됐다. 삶의 터전은 모두 다르지만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을 한 사람들이다.

책은 40여일에 걸친 순례의 기록이다. 노란 화살표는 앞서간 순례자들이 그려놓은 표지.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산티아고로 인도한다. 여행 당시 66세였던 서영은은 유언장까지 쓰고 길을 떠났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그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자신을 벗어던졌다. 그 길에서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다.

서씨가 참석자들에게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 영생에 대해 질문합니다. 청년이 방점을 찍은 부분은 영생인데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대해 말하십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가진 재산 모두 나눠주어라. 그러고 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청년은 현실에서 누리는 모든 것을 가진 상태에서 죽지 않고 사는 방법(영생하는 법)이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살고 있는 현실의 차원을 뛰어넘는, 그 차원을 바꾸는 터닝(Turning)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터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십자가가 바로 터닝, 돌아섬이라고 말했다. 자기를 비수로 찌르지 않고서는 터닝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부자 청년과 같이 마음 중심에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 얽매임의 동기가 되는 재산이나 명예 등을 지닌 채로 믿음 생활을 하면 결국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문이 계속 닫힌 상태로 있게 됩니다. 그 마음을 비수로 찌르는 ‘자기 찢음’을 하지 않고 무늬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서씨 역시 15년 동안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 크리스천이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어떤 것이 과녁에 덜 맞춰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새벽에 눈을 떠 천장을 바라봅니다. 그때, 나를 보게 됩니다. 자기가 자신을 속일 수는 없지요. ‘나이도 있는데 계속 이 정도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하나님, 그분을 만나지 않은 채 신앙생활 할 수 없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결단으로서 일단 산티아고로 떠나게 됐습니다.”

그는 떠나는 순간, 자신이 누려왔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단호히 결심했다. 죽음까지 각오했다. 오직 ‘그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떠났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길을 걷다보니 나의 겉에 입혀 있던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벗겨져 나가면서 어느 순간 온전히 하나님과 직통으로 마주 서는 마음 상태에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장면은 ‘노란 화살표…’에 자세히 나온다. 서씨는 “그것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황홀경, 기쁨이고 확신이었다”고 말했다. 그 만남을 경험하고 나니 이 세상에서 이전 방식과 가치관으로 살 필요가 없어졌다. 하나님 만나고 나서 제일 크게 바뀐 점은 마음 안과 밖이 똑같아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서씨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투명하게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쓰면서 인간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 했다고 한다.

이날 참석자들의 마음속에 ‘터닝’이란 단어가 깊이 박혔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터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욕망은 고스란히 남겨 놓은 채, 자기애에 비수를 꽂지 않고 하나님 따르려 하면 결국 대면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터닝의 지점은 자기 목숨까지라도 던지는 곳입니다. 그 지점에서의 터닝만이 우리를 이전 삶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터닝만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는 지금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식의 삶을 살고 있다. 오직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 외에는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석자들은 깊이 감동했다. 이광자 총장은 “목숨까지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신자로 매일 진실한 기도를 드리며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이 총장은 “진정성이라는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진실하게 책을 썼다. 그 진실함이 부럽다”고 언급했다. 그는 “내 몫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관계를 더욱 친밀히 해 나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란 화살표…’를 읽고 또 읽었다는 김영숙 원장은 “작가가 산티아고로 우리 모두를 데리고 간 것 같다”면서 “솔직하면서도 탁월한 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직접 글을 쓰고 계신 것 같은 착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혜훈 의원도 소감을 말했다. “정치인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정치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특별히 더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부족하기에 터닝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지요. 어제보다 오늘 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역시 하나님 이야기가 나오면 눈시울을 붉히는 이 의원은 “하나님 앞에서 더욱 정직한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달 말로 정년을 맞는 신혜경 교수는 인생의 후반전 사역에 대해 “오직 하나님 마음을 품고 내게 주어진 길을 걸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모두 소감과 다짐을 밝혔다. 책 한 권을 통한 만남은 풍성했다. 그 만남 안에 하나님의 모양이 있어 좋았다. 여류작가 서영은. 이전까지 그의 삶은 예고편이었다. 지금 그는 70을 목전에 두고 찬란한 본편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그를 통해 모두가 산티아고의 길, 하나님 만나는 그 길을 걸어갈 꿈을 가지게 됐다.

글·사진=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