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양형기준 주효, 솜방망이 처벌 크게 줄었다… 1억 넘는 뇌물 공직자 모두 감옥행
입력 2011-08-16 00:35
뇌물 60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 기소됐던 박명환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04년 7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004년 납품계약 업체로부터 1억5000여만원을 챙긴 국민건강보험공단 전 지사장은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라는 ‘관대한’ 형을 선고받았다.
참여연대가 1996년부터 2008년 10월까지 뇌물죄 양형을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율이 다른 사건보다 10∼20%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뇌물죄에 대한 봐주기 논란은 그간 계속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선고된 공직자 323명 중 뇌물액 1억원 이상 전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수억원의 뇌물을 받고도 ‘오랫동안 공직에 봉사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던 관행이 점차 줄고 있는 것이다. 2009년 7월부터 5000만원 이상 뇌물수수자에게 원칙적으로 실형을 선고토록 한 새 양형기준이 시행된 결과로 분석된다.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발간한 ‘2010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이 끝난 공직자 323명 가운데 147명(45.5%)은 실형, 176명(54.5%)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뇌물액이 1억원 이상인 32명은 예외 없이 실형이 선고됐다.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의 경우 24명(96.0%)이 실형을 선고받고, 1명만 집행유예가 내려졌다. 반면 1000만원 미만인 119명 중 실형은 15명(12.6%)에 그쳤고, 나머지 104명(87.4%)은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1000만원 이상∼3000만원 미만의 경우도 집행유예(63명)가 실형(51명)보다 많았다.
평균 형량도 크게 높아졌다. 2009년 하반기 뇌물수수죄로 재판을 받은 51명에게는 평균 징역 1.19년이 선고됐지만, 지난해 323명에 대한 형량은 1.83년으로 54% 늘었다. 1000만원 미만은 징역 7.8개월이 선고됐고,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은 3.55년,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은 5.64년, 5억원 이상은 7년이 내려졌다.
양형기준에 따르면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의 경우 기본 형량이 5∼7년이다. 감경을 받아도 최저 형량이 3년6개월인데, 징역 3년을 넘으면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없다. 1억원 이상∼5억원 미만의 기본 형량은 7∼10년, 5억원 이상은 9∼12년이고 가중되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 양형기준은 강제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지만 이를 벗어난 선고를 할 때는 이유를 판결문에 기재해야 한다.
양형위 관계자는 “뇌물죄 피고인의 처벌이 너무 관대하다는 국민 인식을 반영해 실무 관행보다 양형기준을 다소 높게 만든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대법원 판사는 “최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게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하는 등 각급 법원에서 뇌물죄에 보다 엄격한 형량을 선고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