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꿈꾸던 청춘들의 무모한 日人 암살작전… 연극 ‘청춘 18대1’

입력 2011-08-15 18:04


섶을 지고 뛰어드는 곳이 불속인 줄 알면서도 기어이 달려가는 것이 청춘, 혹은 청춘의 이미지다. 무모함은 간혹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연극 ‘청춘 18대1’은 이 같은 고정관념에 충실한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대의’보다는 ‘무모함’에 방점을 두었다.

시대 배경은 1945년 여름. 도쿄의 일본인 전용 댄스홀에 일련의 수상한 무리들이 찾아든다. 징병을 피해 도망친 형제, 조선인 유학생을 사랑한 일본 여성, 고향을 떠난 어린 여학생 등 평범하지만 위태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 살아남고 싶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댄스홀을 찾은 이 불행한 사람들의 만남 역시 ‘재수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완벽한 일본인인 듯 살지만 사실은 독립군과 연결돼 있었던 조선인 여성 ‘하민’이 댄스홀의 주인이다.

이들이 댄스 파티를 열고 정계의 거물을 초청한 뒤 암살하기로 모의하는 것이 큰 줄거리다. 이들의 미숙함 만큼이나 계획은 어설프고, 실패는 필연이다. 모두의 가슴 속엔 두려움이 솟구친다.

이 연극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다룬 이야기에서 흔히 드러나기 쉬운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개개인의 꿈과 이상에 충실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할 뿐, 행위의 의미나 효과를 따지지 않는 청춘의 서툰 열정이 극을 가득 채운다. 이들의 폭사 후 불과 한 달 만에 광복은 찾아온다. 자막을 통해 그 사실이 새삼 알려질 때, 객석을 가득 채우는 건 감동이라기보다 허탈함이다.

하지만 비극적인 폭사에 앞서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사연이 지루하리만큼 길게 소개되는 장면은 결말이 주는 여운을 오히려 강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극 중 능숙한 일본어와 댄스 실력을 선보이는 배우들의 노력도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제1회 신촌연극제의 마지막 공연작이자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서재형 연출·한아름 작가 작품으로 28일까지 서울 창천동 더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입장권 2만∼3만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