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배금자] 결혼과 돈
입력 2011-08-15 17:32
“賣買婚의 도덕적 타락에 빠진 사회… 자녀에게 가치와 능력의 중요성 가르쳐야”
혼인과정에 거액의 예단비를 지불하거나 혼수와 결혼식 비용에도 억대의 돈을 들여 결혼했지만 단기간에 파탄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즉시 헤어지는 커플도 있고,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 없이 혼인생활을 하거나 혼인신고를 하고 살았지만 수개월 만에 파경을 맞이하는 부부도 있다.
이처럼 결혼한 지 단기간에 갈라서는 경우 피해 당사자의 정신적 고통도 크지만 결혼에 들인 비용이 무의미하게 되어 재산 피해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 피해배상뿐 아니라 결혼할 때 준 예물 예단비를 돌려받고 결혼식에 소요된 비용과 살림구입비 등도 배상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결혼했다가 헤어지는 경우에는 약혼식만 올린 경우와 달라 결혼식 비용의 배상은 안되고 예물 예단비에 대해서는 ‘결혼이 무의미하게 될 정도로 지극히 단기간 파탄된 경우’에 원상회복을 인정해주고 있다.
약혼식을 올리고 파혼하는 경우에는 부당파혼을 당한 피해자가 책임 있는 자에게 위자료는 물론이고 약혼예물에 대한 반환청구와 함께 약혼식에 들어간 비용일체를 배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결혼하였다가 헤어지는 경우에는 사실혼이든, 법률혼이든 결혼식 비용의 배상은 안 되며, 예물 예단비에 대해서도 지극히 단기간의 경우에만 원상회복이 인정된다.
‘결혼이 무의미하게 될 정도로 지극히 단기간 파탄된 경우’는 무엇을 말할까.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으나 판례에서는 주로 1, 2개월 정도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결혼한 지 5개월 만에 이혼하게 된 부부에게도 이를 적용하여 예물 예단비 전액을 돌려주도록 한 서울가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혼인 과정에서 신부 집에서 신랑 집에 예단비 10억원을 보내고, 신랑 집에서 봉채비로 신부 집에 2억원을 보냈으며, 신랑 집에서 아파트를 마련하고 신부 집에서는 아파트의 인테리어 비용으로 4000만원을 지불했는데 결혼식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고 살았지만 5개월 만에 이혼에 이르게 된 경우, 남자는 여자에게 부모가 받은 예단비 8억원과 인테리어비용 4000만원을 반환하라고 한 것이다.
결국 혼인생활 기간이 5개월 정도가 넘어가면 예물 예단비의 반환청구는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위자료나 재산분할청구밖에 허용되지 않는데 혼인생활이 짧으면 위자료도 적고, 재산분할도 적게 된다. 결혼하면서 해 간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여자가 살림살이 자체를 가져갈 권리가 있어도 그 구입비의 배상청구는 안 된다. 결혼할 때 들인 억대 혼수, 예물, 예단비는 무용지물이 되며 호화 결혼 비용의 배상은 받을 길이 없게 된다. 반면 아파트를 살 때 돈을 보탠 남자는 재산분할에서 월등하게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된다.
결혼과정에 여자 측이 호화혼수나 값비싼 예물, 거액의 예단비를 부담하고 남자 측은 집을 장만하는 결혼관례는 헤어질 때 여자에게 엄청나게 손해가 되는 것이다. 호화결혼이 단기간에 파탄나는 대부분의 원인은 예물 예단비를 둘러싸고 일방의 과도한 요구와 기대에 충족하지 않는데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표시에 있는 때가 많다. 이런 소송을 하다보면 인간의 가장 탐욕스럽고 추잡한 면을 보게 된다. 노골적으로 거액의 현금을 예단비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호화혼수와 예물을 어느 곳에서 해오라고 요구하는 목록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해 간 혼수가 마음에 안 든다고 예비 며느리에게 혼수를 던져버리는 시부모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결혼하는 부부가 애정으로 결합된 가정을 가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결혼은 매매혼이지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정도의 돈을 퍼부으며 결혼시킬 바에는 딸이 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며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투자하는 것이 백배 낫다고 본다.
이런 사건에서 호화 혼수와 예물목록을 정리할 때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생각하게 한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완성을 위해 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배금자(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