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희조 (9·끝) 孝정신 확산에 인생 마지막 승부
입력 2011-08-15 17:58
일제의 억압과 한국전쟁은 한국인을 처절한 생존 위기로 내몰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나 또한 지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일제의 길고 잔혹했던 억압 속에서도 믿음과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신앙인으로 지낼 수 있었다. 빗발치는 포화 속에서 숱한 죽음의 고비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기적처럼 생명을 지켜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부족한 자에게 덕 있는 사람들을 붙여서 돌봐주셨다.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고 1999년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첫 번째 부인 못지않게 장점이 참 많다. 무엇보다 가정과 교회에서 모두 잘 섬기는 등 신실하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할머니, 어머니를 통해 어릴 적부터 내 마음에 믿음을 심어주셨다. 그들은 오늘의 내가 있게 한,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다. 가끔 고향엘 갈 때마다 할머니, 어머니의 덕을 생각하고 깊이 감사하게 된다. 비록 지금도 유교 전통이 강해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가정들이 많지만 두 분의 덕에 대해서만큼은 칭찬 일색이다. 두 분에 대한 추모비를 세웠던 것도 이런 분들을 기려야 한다는 동네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연로하지만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내 인생 마지막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효훈련센터’를 짓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나이 드신 분의 잔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기도하고 공부해 봐도 그것밖에는 해답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경제는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너무나 발전했다. 앞으로도 이런 발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할수록 비윤리적인 사회문제는 더 많이 발생한다. 난 이 원인을 놓고 깊이 생각하고 기도했다. 가정 해체가 주요인임을 깨달았다. 내가 자라던 때와 달리 지금은 부모 자식간의 도리가 거의 사라져버렸다. 부모는 너무나 쉽게 이혼을 하고, 자식들은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거의 잃어버렸다. 이제 가정 문제는 너무나 보편화돼 잔인한 뉴스가 나와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정도다.
나는 감히 우리나라의 효정신을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미국은 청교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나라를 세우고 움직였다. 효는 사라져가는 옛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살려가야 하고,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가장 경쟁력 있는 우리만의 정신이다.
요즘 독도와 관련한 문제로 또 다시 역사 공부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여기엔 정부의 딜레마가 있다. 역사는 결국 해석인데, 좌우가 나누어진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정부가 역사를 강조하는 것은 곧 또 다른 정파의 반발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돼 왔다. 하지만 효는 다르다. 좌우의 구분이 필요없다. 공산주의 사회에도 부모가 있고, 민주주의 사회에도 부모가 있다. 어느 사회나 효를 필요로 한다.
효를 유럽 여러 나라는 이해하지 못한다. 동양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의식 있는 목회자, 평신도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효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용기 장로가 가나안농군학교를 통해 농민들을 일깨우고 국민들을 일깨웠던 것처럼 이 효운동이 제대로만 시작된다면 금세 전국민 운동이 될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금세 가슴이 뜨거워진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