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

입력 2011-08-15 17:57


빌립보서 3장 12~14절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게 하려는 것뿐 아니라 현세의 삶을 천국같이 살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을 본받아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살기 위함이며, 그것이 바로 천국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본받을 것은 무엇보다 낮아지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평화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면서도 그에 합당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큰 능력과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아니, 훨씬 더 자기를 낮춰 죄인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주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사람만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러므로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고, 또 나름대로 주를 위해 충성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평소에 자기를 자랑하기 좋아하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물론 교인들조차 존경하지 않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복음을 위해 많은 충성을 하면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존경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는 ‘자기 부인’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을 낮추는 제자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세상에서 사도 바울만큼 그리스도에 대해 깊이 안 자가 몇이며, 복음증거로 여러 번 매 맞고 감옥에 갇혀 죽을 뻔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본문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살펴보면 자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행위로 완벽을 기하려는 율법주의자들보다 더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열심은 결코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회심 이후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는 사도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천국과 부활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을 돌아볼 때, 그리스도 앞에서 자만할 수 없는 존재임을 그는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한 ‘아니요’의 신앙고백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3∼14절) 여기서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이미 잡고 있음을, ‘부으신 부름의 상’이라는 말은 상급이 이미 예비돼 있음을 뜻합니다.

‘아니요’의 신앙은 기존 사고방식과 달리 거꾸로 생각을 하고, 거꾸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 바울이 자기를 부인하며 ‘아니요’라고 고백한 겸손한 믿음을 본받아 바울과 같은 믿음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규왕 목사(수원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