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전 광복회장 “광복의 초심으로 돌아가 사회의 병폐 고쳐가는 도덕성 회복운동을”

입력 2011-08-14 19:22


15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광복절 오찬 행사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김국주(87·서울 남산교회 권사) 전 광복회장이다. 광복군 제3지대 2지구대장, 1군사령부 부사령관(소장) 출신인 그는 오늘의 시국에 대해 할 말이 많다.

14일 오후 전화 인터뷰에서 그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가득 배어 있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해 온 노(老)독립투사의 애절함이 느껴졌다.

“며칠 밤을 새며 광복절 인사말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지금 살아있는 동지마저 세상을 뜨고 나면 우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나 있을는지….”

그가 준비한 인사말의 요지는 66년 전 광복을 맞을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각종 사회 병폐를 없애고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제2의 광복 새정신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요즘 나라꼴이 말이 아니에요. 정치권은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이념 싸움에 바쁘고, 경제단체들은 서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지요. 국민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명품이나 여행 등에만 관심이 많고요. 이게 우리가 목숨 바쳐 가면서 되찾은 나라의 모습이어야 합니까.”

1924년 함남 원산의 한약방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열아홉 되던 해인 43년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펼치던 장조민씨를 만난다. 장씨와 의기투합한 그는 43년 8월 중일전쟁의 최전선이던 안후이성 푸양에서 병사를 모집하던 광복군 3지대(지대장 김학규)에 투신했다. 고된 훈련 속에서 국내 진입을 준비하던 그에게 일본의 패망 소식이 들려왔다. 아쉬움 속에 미 해군 수송선을 타고 상하이를 거쳐 인천으로 귀국해야 했다. 광복군이 해체되자 그는 육군사관학교에 특별 입교한 뒤 6·25전쟁 때 중대장, 대대장으로 전투에 참여했다.

“평양을 점령할 때 가장 먼저 평양에 진입했어요. 평북 운산에서 중공군과 첫 전투를 치른 것도 우리 부대였고, 낙동강 전선에서 숱한 전우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아픔도 있었어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일본 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하려는 것을 지켜본 그의 소감은 어떨까.

“분쟁을 여론화시켜 독도를 자기 땅으로 주장하려는 속셈이에요. 일종의 정치 포퓰리즘이지요. 일본은 아직 정식으로 한반도 침략을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민족적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약소국의 설움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며 “일본은 자국민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우리는 광복절 날 태극기도 걸지 않는 가정이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늘날 되새겨야 할 광복 정신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곧바로 “외세의 모진 압박을 이겨낸 위대한 민족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내와 함께 서울 반포4동 남산교회에 출석하는 그는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를 향해 웅비하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매순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김국주 전 광복회장은

1924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나 43∼46년 중국에서 광복군 3지대 2지구 대장을 지내다 귀국했다. 48년 육사 7기 특별 졸업하고 6·25 전쟁 내내 중대장과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79년 1군사령부 부사령관(소장)으로 예편했다. 79∼85년 광복군동지회장, 86∼92년 독립기념관 이사, 2001∼2005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2005∼2008년 광복회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 반포동 남산교회 권사로 섬기고 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