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지자체장 집무실 축소 지시후 6곳 둘러보니… 명패만 바꿔 축소 시늉 ‘칸 가리고 아웅’

입력 2011-08-14 21:26


14일 부산시청 7층 허남식 시장 집무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0여m 복도를 따라 가면 좌측에 널찍한 실내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100㎡의 정원에는 수십종의 수목과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정원 한가운데 있는 물레방아에서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복도 오른편은 지난달 말 3700여만원을 들여 전면 리모델링한 허 시장의 집무실이 있다.

리모델링 이전보다 비서실 면적이 줄어 답답한 인상을 받은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부산시는 지자체장 집무실 면적을 축소하라는 행정안전부의 지시에 따라 지난달 비서실을 축소하고 비서실 내 3개의 방으로 된 내빈 대기실을 없앴다.

그러나 이 공간에는 국제의전실(104.5㎡)과 민원상담실(46.7㎡)이 새로 들어섰다. 이 때문에 명패만 바꿔 집무실 면적 축소 시늉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21개국 24개 자매도시에서 매월 1~2회 공식 사절이 방문하고 있으나 그동안 별도 의전실이 없어 불편했던 점을 해소했다”고 말했다.

전북도는 김완주 지사의 집무실을 바로 옆 접견실과 맞바꾸는 방법으로 집무실 면적 초과 문제를 해결했다. 지사실의 전체 면적은 당초 집무실 187㎡와 접견실 74.88㎡, 비서실 88.92㎡를 포함해 모두 350.8㎡였다. 하지만 지사실 면적이 문제가 되자 도는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탁자와 대형 원형 탁자는 그대로 둔 채 절반 크기의 접견실에 김 지사의 책상과 컴퓨터, 책 등만 옮겼다. 당초 집무실은 문 밖에 ‘의전실’이라는 작은 표지판을 붙인 뒤 지사실 전체 면적에서 제외했다. 이 의전실은 비서실을 통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김 지사의 공간이다.

수천만원씩 들여 단체장 집무실을 줄였다고 신고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칸막이를 설치한 뒤 ‘문패’만 새로 다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가 기준 면적을 초과해 시정 지시를 받은 부산·대전·경기·전북·전남 등 광역지자체장 집무실 6곳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제주도를 제외한 5곳에서 단체장들이 집무실의 이름을 의전실과 민원상담실 등으로 바꾼 뒤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도는 지사 집무실이 185.5㎡로 기준 면적(165㎡)을 초과하자 내부 구조를 변경하는 공사를 하지 않은 채 지사실과 부속실 사이에 있는 21㎡ 크기의 접견실을 ‘지역민원상담실’로 이름만 바꿨다.

대전시는 시장 집무실을 줄여 57㎡짜리 회의실을 하나 더 만들었다. 집무실 옆에는 기존 중회의실(153.54㎡)이 그대로 있다.

지자체의 한 공무원은 “행안부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 교부세 삭감 등 불이익 준다고 겁을 주니 수천만원이 들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문을 달고 칸막이를 하는 형식적인 공사로 집무실 안에 또 하나의 방이 생긴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가 자율 신고하는 사안이어서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일부 부작용도 있지만 사무공간을 줄여 북카페를 설치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행안부는 지난해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령’을 개정한 뒤 1년여의 유예기간을 두고 단체장 집무실을 포함해 공공청사의 면적 초과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시했었다.

황일송 기자, 대전·부산·전주=정재학 윤봉학 김용권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