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O 지도상 동중국해=동해로 등재, 서양 고지도엔 한국해 명칭 압도적”

입력 2011-08-14 21:36


이돈수 한국해연구소장

지난 주말 고지도 수집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이돈수(46) 한국해연구소 소장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외교통상부가 12일 국제지도 등에 동해 이외의 표기를 고려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이튿날 이재오 특임장관이 ‘동해’ 대신 ‘한국해’ 표기를 주장하는 트윗을 날린 것이다. 2004년 “동해 대신 한국해를 주장하는 게 맞다”고 한 이 소장의 주장이 7년 만에 정부의 논의 테이블에 오르게 된 것이다.

다들 동해(East Sea)를 말할 때 혼자 한국해(Sea of Korea)를 떠든 그는 지난 몇 년간 정부와 지리학계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쓸데없는 잡음 일으키지 말라’는 경고성 전화부터 ‘동해 말고 다른 걸 주장하려면 한국을 떠나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간혹 동조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동해를 주장해온 주류 학자들의 태도는 분명한 ‘반대’였다.

이 소장은 정부 태도에 변화가 감지된 14일 “그동안 혼자 열심히 주장했는데 방향이 전환될 가능성이 생긴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특히 국민일보에 기고(본보 12일 25면 ‘동해를 한국해로’)를 한 직후에 이런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내가) 계기를 제공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지리학자가 아니다. 개인 컬렉터일 뿐인 그가 1992년 이래 한국 정부의 입장이었던 동해를 틀렸다고 말할 용기를 낸 것은 지난 20여년간 전 세계를 돌며 모은 250점 안팎의 고지도, 즉 탄탄한 증거자료 덕이었다. 국제수로기구(IHO)가 발간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도 그중 하나. 전 세계 바다 명칭과 영역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잡지다. 1928년 8월 초 판본이 나온 뒤 37년과 52년 각각 2, 3차 개정판이 나왔는데 국내에서 원본을 가진 이는 이 소장이 유일하다.

그는 이날 소장 자료를 처음 공개하며 “(정부는) 충분한 연구 없이 동해를 국론으로 정해놓은 뒤 동해여야 하는 논리를 나중에 개발했다. 앞뒤가 바뀐 것”이라며 “세 가지 판본의 ‘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면밀히 검토하면 한국해여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일 간 논란이 되고 있는 해역은 흔히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가 아니라 초간본의 48번 영역, 즉 남해, 동해, 러시아 인근 해역을 포괄하는 넓은 바다를 가리킨다. 동해라는 명칭으로는 실제 영역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름 충돌’도 걸림돌이다. 초간본 46번 구역을 보면 동해는 이미 중국의 동쪽 바다를 가리키는 명칭(중국해 혹은 동해·China Sea or Tung Hai)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다른 동해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가장 큰 실수는 정치 논리를 끌어온 것이다. 이 소장은 “한국은 동해의 타당성을 말하면서 ‘2000년 동안 쓰던 동해라는 명칭을 일제시대에 빼앗겼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치 및 역사 논쟁으로 비화시키는 우를 범했다”며 “지리적 명칭 논쟁이 정치적 다툼으로 확대되면 국제사회는 발을 담그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고 걱정했다. 반면 한국해는 서양 고지도에서 1830년 이전에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 만큼 일본해와 병기될 논리적 이유가 충분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가 동해 병기를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니 일단 물꼬는 터졌다. 이 소장은 “말만 던져놓고 흐지부지되는 쇼일 수 있어서 그게 걱정이긴 하다. 갈 길이 멀다”며 “앞으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차분하게 논리가 가다듬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