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값 올랐다지만 속만 쓰려요”… 대관령 고랭지 배추 재배 農心 르포

입력 2011-08-14 18:01


“배추 값이 금값이면 뭐해요. 말해봐야 속만 쓰리지.”

배추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지난 12일 해발 1100m에 위치해 ‘하늘아래 첫 마을’로 불리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속칭 안반데기) 배추마을에는 농민들이 무사마귀병(뿌리혹병) 방제와 잡초제거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50여일 가까이 이어지던 비가 그치고 모처럼 화창하게 갠 날씨에 그동안 미뤘던 농약 살포 작업에 나선 것.

그러나 수확을 앞둔 농민들의 얼굴에는 풍작의 기쁨보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추석대목 전 출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 마을 농민들은 지난해 배추 값 폭등의 여파로 올해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해 1주일가량 배추를 늦게 심었다. 게다가 올해 추석이 지난해보다 10여일 이르지만 잦은 비로 배추의 성장이 더딘 상태다.

이 때문에 일부 농민들은 배추 값이 폭락할 때는 한마디 말도 없다가 배추 값이 오르면 야단법석을 떤다며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해마다 배추 값이 좋아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값이 폭락하면 고스란히 빚더미에 올라앉는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지난해 말 배추 값 폭등세가 거듭되자 정부가 중국산 배추를 대거 수입했고, 올해 초 배추 값 폭락사태로 이어져 수확 전에 밭을 갈아엎는 일이 왕왕 벌어졌다.

올 여름배추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가락동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는 배추 도매가격이 5t 트럭 1대당 780만원선에 거래됐다. 지난 6월 160만원 안팎이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5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농민들은 배추 값이 뛰면 떼돈을 버는 것처럼 몰아가는데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45년째 이 마을에서 배추 농사를 지은 김시갑(59)씨는 올해 16만㎡의 밭에 배추를 심어 중간 망(3포기) 크기 720∼800망이 실리는 5t 트럭 한대에 360만원에 계약재배했다. 그는 “올해 5t 트럭 15∼17대 분량의 배추를 생산하면 5400∼6100여만원의 수익을 거두지만 인건비와 농자재 값을 빼고 나면 고작 1000여만원 남짓 손에 쥘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이변도 걱정이다. 올들어 잦은 비에다 강원지역의 무더운 날씨로 작황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왕산면 관계자는 “올해와 같은 무더운 날씨가 반복되면 현재 재배되는 종자로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농촌경제연구원은 14일 ‘고랭지 배추·무 주산지 출하 속보’를 통해 고랭지 채소의 출하량이 계속 줄어들어 이달 중순까지 가격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비싸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배추는 최근 출하량이 이달 초보다 12.5% 감소해 이달 중순이면 배추 상품 10kg(3포기) 기준 서울 가락시장 도매가격이 9000원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무 역시 지난해보다 출하량이 9.4% 줄어든 탓에 상품 18kg당 도매가격이 평년의 2배, 지난해보다 40% 이상 높은 2만7000∼3만3000원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강릉=글·사진 이종구 기자 jg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