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장철균] 조용한 외교와 실효적 지배

입력 2011-08-14 17:53


지난 1일 우리 정부의 입국금지 통보에도 불구하고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김포공항에 나타나 9시간 동안 소란을 피우자 독도 문제가 또다시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일본으로 귀국하자 출발 때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본 언론이 공항에서부터 크게 보도하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독도 영유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에 주재하는 외국 특파원들은 독도가 한·일 간에 분쟁화되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미국 외교부도 ‘한·일 양국이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법을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일본 정부와 국회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준’ 이들의 공항 소요를 내심 만족해하는 눈치다. 그리고 다음날 독도의 일본 영유권 주장을 반복하는 방위백서를 발표했다. 나아가 한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국제사법재판소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김포공항의 나쁜 학습효과

한·일 양국의 독도에 대한 입장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변한 것이 없다. 일본은 국제재판소에서 해결하자는 주장으로 분쟁지역화 전략에 따라 공격적 외교를 구사해 왔고, 한국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의 영토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무시 전략에 따라 수비적 외교로 대응해 왔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초조해진 일본은 교과서와 방위백서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분쟁지역화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일본은 이와 대조적으로 자신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댜오위다오(센가쿠 열도)에 대해서는 중국 측의 끊임없는 분쟁지역화 행동에 대해 조용한 외교로 대응해오고 있다.

일본의 전략은 한국의 조용한 외교를 요란한 외교로 유도하자는 것인데 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술책에 자주 말려드는 것일까. 이번 경우를 살펴보자. 먼저 지난 4월 일본 자민당이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정부에 건의하자, 5월에는 한국 민주당 의원 3명이 러·일 간 분쟁지역인 남쿠릴 열도를 방문했고 이를 빌미로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울릉도 방문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이 울릉도 방문 계획을 발표하자 국민감정에 편승한 소수의 정치인이 ‘독도 지킴이’ 등 과잉 대응을 하면서 독도 문제가 증폭되었다. 국민이야 어찌 분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할 공인이 대중영합하여 일본을 유리하게 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여러 번 반복된 경험을 통해 독도는 조용할수록 우리에게 유리하고, 소란해질수록 일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분명한 결론이다. 조용한 외교를 구사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 의원의 입국 거부는 좋지 않은 학습효과를 남겼다. 단호한 대응으로 결정한 입국금지가 일본에 맞장구를 쳐준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공항에서 재미를 보려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계속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두운 과거사’ 국제 이슈로

그렇다고 일본의 시비에 대해 조용한 대응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이 문제를 만들 때마다 우리는 독도에 주민들의 숙소나 방파제 같은, 국제법적으로 유효한 시설물을 하나씩 건설해 나감으로써 실효적 지배를 한층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가 아닌 국제사회로 나가 일본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는 위안부와 같은 과거사 문제를 다시 한번 제기하여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을사조약 무효와 명성황후시해 같은 문제를 관련 국제재판소에 회부해 보자. 물론 일본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시비를 걸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응징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일본이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본 의원들의 공항 소요는 우리에게 또다른 과제를 안기고 있다.

장철균 서희외교포럼 대표 (전 스위스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