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송원근] 신용등급 강등 감상법
입력 2011-08-14 14:46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하나인 S&P가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지난 70여년간 유지하던 트리플A에서 더블A플러스로 강등하면서 그 여파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사실 미국 정치권의 연방정부 부채상한 증액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시장의 관심사는 미국의 디폴트 여부였다. 따라서 부채상한 증액 합의로 미국이 디폴트 위기에서 벗어남으로써 금융시장은 안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협상 과정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었고 재정적자와 부채 문제 해소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으며 신용등급 강등은 이런 시장의 불안감에 불을 질렀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연상시킨다. 대형 투자은행들의 파산, 금융시장 폭락, 그리고 실물경제의 급격한 침체로 이어진 것이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양상이었다. 현재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가 유럽 재정위기, 미국 경기의 둔화와 맞물려 금융시장 폭락으로 이어져 2008년의 위기가 재현되는 게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두 위기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008년의 위기는 주택시장 거품 붕괴와 더불어 모기지와 관련 파생상품의 대규모 부실이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나타난 것인 반면 현재의 위기는 선진국 정부의 재정적자, 국가부채 누적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인한 것이다.
2008년 위기에 대한 대처는 국제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비정상적인 통화정책과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정책이었다. 반면 현재의 위기에 대해서는 선진국 정부들이 마땅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 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은 쉽지 않고 인플레이션 우려로 통화정책 시행에도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08년과 현재의 위기의 공통점은 근본적인 원인이 유동성 증대에 따른 값싼 신용의 과도한 공급에 있다. 2008년의 위기는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한 장기간의 초저금리와 유동성 공급 증대라는 통화정책으로 민간의 신용과 부채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현재의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역시 양적완화 등 유동성 증대에 기초한 신용 공급과 재정지출 확대로 정부의 재정적자와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통화와 신용 공급 증대가 양자 간의 공통점이라면 민간의 부채가 정부의 부채로 대체되었다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한 유동성과 신용의 증대는 막대한 정부 부채로 귀결됐고 이것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되어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위기를 불러온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위기는 2008년 위기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기 극복을 위해 또 다시 양적완화와 같은 유동성 공급 증대로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뿐만 아니라 선진국 정부들로 하여금 유동성 증대를 통해 경기부양 목적의 지출이나 늘어나는 복지지출을 충당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또한 시장과 경기의 재정에 대한 의존성을 더욱 높여 민간 부문이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반면 선진국 정부들의 재정적자와 부채의 증가는 지속가능한 수준을 넘어서 국가부도가 빈발하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현재의 위기는 준칙에 의한 통화정책으로의 복귀, 그리고 정부지출과 재정적자 삭감을 통해 정부 부문을 줄이고 민간 부문과 시장의 자생력을 회복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유동성 증대에 기초한 경기부양과 복지지출 지속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이겨내고 재정 건전성과 시장의 자생력을 회복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