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감과 돌아옴의 반복을 통해 바라본 삶의 여정… 이홍섭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터미널’
입력 2011-08-12 17:48
여름 휴가철도 어느덧 끝물로 치닫고 있지만 나를 비우기 위한 여행은 주머니에 차표 한 장을 찔러 넣고 지방의 낯선 터미널을 서성이는 로망이 제격일 것이다. 터미널은 떠나가는 장소이자 돌아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떠나감은 무언가를 버리는 행위이며 돌아옴은 무언가를 다시 회복하는 행위이다.
서울에서의 삶을 등지고 고향인 강원도 강릉에 터를 잡은 이홍섭(46)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터미널’(문학동네)은 문자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터미널 모퉁이에서 만난 정경들이 주를 이룬다.
“강릉고속버스터미널 기역 자 모퉁이에서/ 앳된 여인이 갓난아이를 안고 울고 있다/ 울음이 멈추지 않자/ 누가 볼세라 기역 자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다// 저 모퉁이가 다 닳을 동안/ 그녀가 떠나보낸 누군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며/ 그녀는 모퉁이를 오가며 울고 있는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든 아이는 앳되고 앳되어/ 먼 훗날, 맘마의 저 울음을 기억할 수 없고/ 기역 자 모퉁이만 댕그라니 남은 터미널은/ 저 넘치는 울음을 받아줄 수 없다”(‘터미널 2’ 부분)
터미널 모퉁이는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여인의 울음을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다. 모퉁이를 다 닳게 만드는 울음은 이홍섭이 터미널에서 발견한 삶의 비경이지만 거기엔 어릴 적 추억도 함께 스며 있다. 그는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유년 시절의 삽화를 통해 과거가 현재에도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상황을 제시한다.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중략) //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터미널’ 부분)
터미널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점이기도 하다. 기억의 파편들이 너울거리고 추억 저편의 사물들이 고개를 내미는 터미널. 그곳은 고정된 장소가 아니라 버스가 뿜어대는 매연의 휘발성처럼 삶을 기화시키고 속을 울렁이게 하는 유동적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그걸 누가 모르랴. ‘터미널’ 연작시로 끝났다면 다소 싱거웠을 이번 시집은 이 한 편의 시로 하여금 한 단계 더 심화된다.
“고향에 돌아왔으니 이제 고향은 저 멀리 던져버려야겠다// 고향에 짐을 푼 첫날 밤, 이 한 구절이 섬광처럼 지나갔으나/ 계절이 바뀌어도 뒷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나그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귀거래, 귀거래’ 전문)
고향에 돌아와 비로소 고향을 버린다는 말. 그리고 다음 말을 잇지 못한 채 시인의 가슴은 먹먹할 뿐이다. 그는 또 다른 시편에서 “이 언덕에 오르면/ 할미꽃처럼 서럽던 바로 여기가/ 더는 퇴할 데 없는 자리임을 알겠다// (중략) // 나아가고 나아간 뒤/ 다시 이 붉은 언덕으로 퇴할 일이다”(‘붉은 언덕-지변동’)라고 썼다.
그가 말하는 ‘퇴(退)’의 의미는 물러나고, 그만두고, 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 나아감과 돌아옴은 일생을 가로지르는 화두에 가깝다. 멀리 나아갔으니 제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왔으니 이제 다시 나아갈 일만 남았다. 그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 단초를 알 수 있는 시편이 있다.
“자작나무 떼를 지나온 하얗고/ 투명하고, 수정처럼 차디찬 바람 말일세/ 고향에 돌아온 것은/ 순전히 이 바람을 맞고 싶어서이지// 창을 열면/ 거기 흰 갈기를 날리며/ 수백 마리 백마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지”(‘자작나무 숲을 지나온 바람’ 부분)
영북(嶺北) 산줄기 너머 북쪽. 그에게 영북은 자작나무 하얀 껍질처럼 순정한 삶의 시원인 것이다.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가야 하는 대관령 너머는 지척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손이 닿지 않는 아름다운 고립의 다른 이름이다. 이홍섭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을 열고 대관령을 바라보는 시인이다. 그의 귀에는 벌써 눈 덮인 산맥을 나는 솔개의 날개소리가 들리겠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