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오은영] 내 마음 속의 참나무
입력 2011-08-11 19:42
뽕나무가 뽕 방귀를 뀌니 대나무가 댓기놈 야단을 치네, 참나무가 하는 말 참아라, 라는 동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을 일이 무척 많이 생긴다. 직장에서도, 가족 간에도, 친구 사이에서도 참고 삭여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성질대로 하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그 성질 때문에 일이 꼬이면 결국 본인도 불편해지고 만다.
나는 요즘 마음속에 참나무 여러 그루 심으며 산다. 우리 집 위층서 밤낮없이 3차 대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어떨 땐 엄마와 아들이 싸우고, 어떨 땐 아빠도 함께 싸운다. 피아노 소리, 아이들 뛰어다니는 소리도 참기 힘든데 악쓰며 싸우는 소리라니….
하루는 자기 방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던 큰딸이 싸우는 소리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아이 방으로 가보니 민망한 욕설까지 들린다. 안 되겠다 싶어 윗집에 경고해 달라고 경비실에 인터폰을 하려 했더니 남편이 말렸다.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다투다 결국 이웃을 살해하고 만 끔찍한 사건도 있다며 무조건 참으란다.
하긴 우리 집에 입시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주 싸우는 윗집이 안쓰럽기도 해 꾹 참기로 했다.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큰딸은 공공주택생활의 기본을 안 지키는 사람은 외국처럼 경고조치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설계회사에 다니는 티를 내며 층간소음 허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건축법에 화풀이를 했다.
딸아이 말로는 아파트 신축 때 적용되는 허용치는 식탁을 끌거나 마늘 찧는 소리처럼 가볍고 딱딱한 경량충격음은 58dB 이하, 아이들 뛰는 소리 같은 중량충격음은 50dB 이하다. 쉽게 말하면 세탁기 탈수기 돌릴 때 나는 소리정도다. 그것도 2004년 이후에 생긴 법이라며 우리 아파트처럼 낡은 아파트들은 전혀 그런 규제를 받지 않고 세워졌단다.
1930년 최초로 풍전아파트가 세워진 뒤 우리나라는 국민 절반이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공화국이 되었다. 주거형태가 아파트로 바뀐 지 80년도 넘은 것이다. 그런데 층간소음에 대한 건축규제가 얼마 전에야 생겼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은 더 늘고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아마도 옛날보다 이웃 간 왕래가 없으니 정이 쌓일 리 없고, 그러니 배려하고픈 마음도, 참을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리라.
사람의 인내심에는 개인차가 크므로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을 개인의 인내심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아파트를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없고, 당장 이사 갈 수도 없는 이상 우리 스스로 공동주택생활의 기본을 지키고 이웃을 배려하면서 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처럼 떡이랑 밥을 나눠먹으며 정을 쌓으면 더 좋고.
그리고 보니 떡을 들고 가서 친해진 뒤로 자연스럽게 소음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어떤 집 이야기가 기억난다. 나도 내일쯤 윗집에 시원한 수박이라도 들고 가볼까? 가서 하소연도 들어주면서 친해지도록 노력해볼까? 좁은 마음속에 참나무를 빼곡빼곡 심어나가기보다 그게 더 쉬운 일일 수도 있겠다.
오은영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