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모두의 잘못이기에 아무도 책임질 필요 없다?

입력 2011-08-11 17:50


기후변화의 먹이사슬 / 베른하르트 푀터 / 이후

지구온난화라는 주제는 지적 논쟁으로서 매력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한때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아니다 혹은 인간이 온난화의 주범이다, 아니다를 놓고 책이 쏟아졌는데 요즘에는 ‘어떻게’ 온난화를 저지할까를 두고 대책을 논하는 게 대세이다.

해법 위주의 기후논쟁은 건전해보이지만 중요한 걸 빠뜨렸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더 많이 책임질 것인가. 즉 정치논쟁이다. ‘책임이 모두에게 있고 대동단결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식의 오해도 낳는다. 생명체는 누구나 탄소발자국을 남긴다. 그래서 온난화가 모두의 잘못이라는 건 원론적으로 옳은 얘기다. 하지만 ‘다 잘못했다’는 ‘아무도 책임질 필요 없다’와 동의어라는 점에서 무책임하다. 저자는 원인 제공자를 찾고 그에게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논리대로라면 ‘우리 모두가 지구온난화의 피해자’라는 선언도 틀린 말이다. 기후변화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수익자가 각각 존재한다. 이를테면 2007년 한 해에만 매출 4400억 달러를 기록한 세계 1위 석유기업 엑손모빌이나 1995∼2005년 사용량이 35%나 늘어나며 르네상스를 맞은 석탄, 850개 이상의 석탄화력발전소 건립을 계획한 미국 중국 인도 정부 등은 가해자다.

‘교토 의정서’도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가해자 편에 선다. 열대우림이 냉각기능을 하는 것과 달리, 캐나다 스칸디나비아반도 러시아에 우거진 숲은 눈 덮인 평야보다 빛을 더 많이 흡수해 지구를 데운다. 따라서 같은 숫자의 나무를 심는다면 온대나 냉대보다 열대의 숲에 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과학이 이렇게 알려주는데도, 교토의정서는 위도를 무시한 채 조림 전체를 기후 보호 정책으로 규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아마존의 우림은 빠르게 훼손되고, 북구의 숲은 갈수록 울창해진다.

기후변화의 무대에서는 피해자와 수익자도 확연히 갈라진다.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태평양 바누아투 섬과 카터릿 섬에서는 세계 최초로 기후난민이 생겨난 반면,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한 스웨덴은 되레 살기가 좋아졌다. 청정기술, 녹색기술은 돈벼락을 맞았다. 2007년 한 해 1170억 달러가 유입돼 닷컴붐에 이어 왓컴붐(Watt-Com·Watt는 독일어로 갯벌이나 모래톱을 뜻하는 말로 환경생태기업을 가리킨다)이 불고 있다. 저자는 독일 ‘디 차이트’ ‘지오’ 등에 기후변화와 소비자 정책에 대해 쓰는 자유기고가. 정현경 옮김.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