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길에서 살짝 벗어나 보세요

입력 2011-08-11 17:50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 카트린 파시히·알렉스 숄츠 / 김영사

여행의 기술은 정확히 목적지에 닿는 기술이 아닐는지. 가장 효율적이며 특별히 안락한 방식으로 원하는 풍광 속으로 이동하는 것.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교통은 편리하고 정보는 넘쳐나니 목표물을 찾느라 헤맬 까닭이 없다. 그래서 이런 역설적 제안도 나왔을 게다. 우리 길 한번 잃어보자.

독일 작가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가 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은 에세이라고도 실용서라고도 혹은 그 중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어정쩡해서 흥미로운 책이다. 여행의 기술을 가르쳐주는데 그 기술이라는 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기술이 아니라 길을 잃는 기술이다. 의도적 길 잃기다.

저자들의 길 잃기 실험은 ‘여행은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대단한 신념에서 비롯됐다. 여행이 관광으로, 인증샷 남기기로 축소된 시대에 진짜 여행은 오직 길을 잃었을 때만 가능해졌다고 저자들은 굳게 믿는다.

다만 오지에서 길 잃고 목숨까지 잃는 게 목표는 아니다. 필요한 건 “살짝 길을 잃은 상태, 그것도 자발적으로 길을 잃은 상태”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적당히 길 잃는 기술이다.

실은 길을 잃는 것도 쉽지는 않다. 구글맵과 GPS의 시대에 상세지도와 내비게이션으로 무장한 여행객이 표지판으로 가득한 관광지에서 헤매는 건 하늘에서 떨어진 냉장고에 머리를 맞는 것만큼이나 가능성 없는 일이긴 하다. 여기서 요령이 필요해진다. 일단 지도를 던져버려야 한다. 시시콜콜 정보가 많은 여행안내서도 스포일러다. 뭘 보게 될지 다 알고 떠나는 건 끝을 알고 보는 반전영화만큼이나 김 빠진다.

저자는 “매년 천오백만명의 관광객이 무엇을 볼지를 정확히 알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찾아가는” 걸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막상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나이아가라 폭포가 상상과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는 것뿐이다. 당연히 떠나기 전에 알고 있던 것 이상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아무것도 예상하지 말고, 어떤 기대도 없이 그저 찾아가보라. 저자의 주문이다. 겁 많은 초급자라면 출발지와 도착지를 정한 뒤 그 사이에서 적당히 길을 잃어볼 수 있다.

준비가 완벽해도 표지판이 눈에 띄거나 막다른 길에 도달해 길을 찾아버리게 될지 모른다. 이때는 묵묵히 다음 골목으로 접어들거나 방향을 바꾸거나 혹은 안내판을 못 본 척 반대방향으로 가면 된다. 앞서 걷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간다든지, 저 멀리 우뚝 솟은 탑을 목표로 걷거나 전혀 엉뚱한 생각에 빠져드는 것도 좋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주 낯선 곳, 뜻밖의 장소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제 성공적으로 길을 잃었다. 목표했던 길에서 벗어났다는 건 계획도 함께 사라졌다는 뜻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봐야 할 유적과 먹어야 할 추천레스토랑 목록을 들고 바삐 움직이면서 행여 빠뜨린 곳은 없는지, 비용은 초과하지 않았는지, 속도가 느리진 않았는지 점검하는 그런 여행도 사라졌다. 진짜 휴가가 시작된 것이다. 드디어 시간은 여행자의 보폭으로 느긋하게 흐른다. 길을 잃는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①한번 헤매고 나면 낯선 도시의 지리를 제대로 파악한다. ②오지에 찾아가지 않아도 모험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이점도 있다.

책 말미에는 1932년 비행기 아틀란티스를 타고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호주로 여행하려던 두 독일 청년의 이야기를 전했다. 악천후로 예상항로를 벗어나 남쪽에 비상착륙한 이들은 날이 개고 다시 이륙했지만 항로를 잘못 계산해 하늘에서 길을 잃었다. 섬에 또 불시착했을 때는 기름도 식량도 물도 떨어진 상태. 굶주림 끝에 배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이번에는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두 남자는 길을 잃고 또 잃었다. 끝없이 길을 잃은 끝에 둘은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길을 찾은 것이다.

결국 길을 잃는 목적은 다시 길을 찾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 떠난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저자는 친절하게 길 찾는 방법도 알려준다. ‘아무 길이나 따라가기’ ‘무조건 앞으로 가기’ ‘높은 데 올라가기’ ‘왔던 길 되돌아가기’ ‘헨젤과 그레텔처럼 표시 남기기’…. 그렇게 떠났던 휴가에서 일상으로, 길 밖에서 길로 되돌아가면 된다. 이미선 옮김.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