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계급장 떼기

입력 2011-08-11 19:29

완장(腕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뭔가 잘못된 권력의 모습이다. ‘완장 찼다’고 표현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6·25 때 북한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남로당 잔존세력이나 적색분자들이 빨간 완장을 차고 다니며 행패를 부렸다는 사실을 듣고 배워서 그럴까.

소설가 윤흥길의 대표작인 ‘완장’도 비슷한 줄거리다. 종술이란 주인공이 저수지 관리인이 되면서 완장을 찬다.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된 최사장이란 인물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은 후 양어장을 만들어 별 볼일 없이 객지를 떠돌다 온 종술을 관리인 자리에 앉힌 것. 근데 웬걸. 이 종술이란 인물이 완장을 찬 뒤에는 안면몰수하고 권력을 행사하다 마지막엔 주인인 최사장한테까지 대든다. 한국인의 권력의식을 진단하는 도구로 ‘완장’을 차용해 피폐한 권력의 이면을 풍자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 완장이다. 어깨에 붙이는 것은 견장(肩章)이며 군인, 경찰관 등의 제복에 다는 계급장이 이에 해당한다.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는 것은 신분이나 지위의 고하를 벗어나 동등한 지위에서 대화하자는 것이다. 빈정대는 의미만 아니라면 계급장 떼고 말하자는 것은 좋은 의미다. 지시나 복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 이해 속에서 일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의식이 명확한 경찰이 실제로 계급장을 떼고 일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청 등 4개 지방 경찰청은 순경, 경장, 경사, 경위 등 현장 경찰관의 근무복에 8일부터 계급장 대신 경찰을 상징하는 ‘참수리 경찰장’을 부착한다고 밝혔다. 계급과 지위를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일과 업무 중심으로 개선하고 하위직 현장 경찰관이 더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경찰서 별로 시행해 본 결과 순기능이 많아 곧 전 경찰에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권위의식이나 특권의식이 만연된 사회를 빗대 완장문화가 판친다고 한다. 민주화가 진행된 우리사회에서 완장문화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남아있다면 경찰이나 군인처럼 위계질서가 필요한 집단 몇몇 곳일 것이다. 목숨 걸고 일하는 이런 집단에 어느 정도 강제와 권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경찰이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힘든 실험을 한다니 기대가 크다. 군인들도 훈련이나 전투 시에만 계급장을 달고 평상시에는 부대를 상징하는 마크만 달고 생활한다면 구타 등 가혹행위 등이 많이 줄지 않을까.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