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 토크] 예견된 ‘일본해’
입력 2011-08-11 18:00
그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최근 미국과 영국은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표기(사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서한을 국제수로기구(IHO)에 제출했다. 한국 언론은 연일 격앙된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동해 표기를 주장하는 정부의 비논리성과 안일한 태도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1999년 미국의 비상설 정부기구 미국지명위원회(BGN)는 ‘널리 인정된(widely accepted)’ 명칭 사용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에도 미국 관계자들은 한국의 동해 표기를 수용하기 어렵고 더 광범위하게 쓰이는 명칭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항할 논리적 설득을 게을리 했다.
우리는 왜 동해의 영문표기(East Sea) 논리가 국제사회에 호소력이 없는지 반문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90년대 후반부터 동해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명칭 분쟁을 정확히 알고 있다. 우선, 우리와 일본의 주장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한국은 2000년 이상 우리 민족이 사용한 토착지명(endonym)으로서의 동해를 주장했다. 반면 일본은 일본해 명칭이 외국으로부터 수용된 외래지명(exonym)임을 인정하고 세계인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명칭이라는 점에 논리의 초점을 맞췄다. 이런 차이는 국제사회가 동해 표기를 비논리적이고 국수주의적 주장으로 인식케 했다.
국제사회에 제출된 증거자료에서도 허점이 확인됐다. 우리는 일본해가 외래지명이므로 토착지명인 동해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증거자료로는 외래지명인 한국해(Sea of Korea)가 표기된 서양 고지도를 제출했다. 주장과 증거자료가 상반된 것이다.
또 우리는 일본의 지배에 의해 동해가 일본해로 변경 표기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양 고지도에서 동해라는 명칭이 사라진 것은 그 이전이다. 동해는 서양 고지도에서 짧은 기간 사용됐다 한국해로 변경되면서 사라진 명칭이다. 일제 식민지가 시작될 무렵 대한제국이 사용했던 명칭도 동해가 아니라 대한해와 조선해였다.
동해라는 명칭이 의미하는 협소한 해양 영역도 문제다. IHO 지도에 등록된 일본해 영역은 동해와 러시아 인근 해역, 대한해협과 남해를 포함한다. 동해는 우리나라 동쪽 근해를 일컫는 단어로 남해와 러시아 해역까지 포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2004년부터 동해 명칭을 국내 표준명칭과 국제 표준명칭으로 구분해 접근할 것을 제안해왔다. 국내표준 명칭으로는 ‘동해’를 사용하되, 세계인이 사용할 국제 표준명칭으로는 ‘Sea of Korea(한국해)’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또 한국해 표기의 논리적 구성을 국제 시각에 맞춰 재설계하자고 제안했다.
실제 한국해는 국제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명칭이다. 2004년 9월 유엔지명전문가회의(UNGEGN) 지명위원회 나프텔리 캐드먼 위원장은 한국해와 일본해의 병행 표기를 지지했다. 그의 노력으로 이스라엘 최대 지도 제작사인 예브니 퍼블리싱 하우스가 세계지도에 한국해(Yam Korea)와 일본해(Yam Japan)를 병행 표기했다. 지명위원회 슬로베니아 위원도 한국해 표기에 긍정적인 입장을 알려왔다. 2009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이스라엘의 모세 브라워 텔아비브대학 교수도 “한국이 동해를 한국해로 바꾸고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설명하면 일본해로 단독 표기된 상당수 지도가 한국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것이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국제 표준명칭으로서 ‘한국해(Sea of Korea)’ 사용에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2005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SOC(Sea of Corea)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6년 포털사이트 ‘다음’이 동해 명칭을 한국해로 바꾸는 것을 놓고 네티즌 투표를 실시했는데 2만여명의 투표자 중 80%에 달하는 네티즌이 ‘한국해로 변경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와 학계는 한국해 표기 주장에 대해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입장 선회를 할 경우 지난 20년간의 노력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을 지지해온 학자들도 입장을 바꿀 경우 그간의 학문적 업적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학계가 동해 표기 주장을 재검토해야 내년에 IHO가 출간할 ‘해양과 바다의 경계’ 4차 개정판의 일본해 단독표기를 막을 수 있다. 현재 IHO 해도집(海圖集) 부록에 동해 표기를 싣자는 절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부록에 동해를 표기하는 방안은 책 본문에 동해 표기가 빠진다는 의미여서 이 역시 일본해를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1953년 3차 개정판을 출간한 후 58년 만에 4차 개정판을 준비하는 점을 감안해 정부와 학계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에 실패하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5차 개정판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부와 학계의 결단이 시급하다.
이돈수 한국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