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금융 쇼크] 치솟는 물가 잡아야 하는데… 한은, 금리 딜레마
입력 2011-08-11 22:09
한국은행이 심각한 통화정책 딜레마에 빠졌다. 4% 후반대까지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미국, 유럽 재정위기 영향으로 국내 경기가 침체 기미를 보이면서 금리를 동결하기도, 올리기도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미국의 제로금리 유지 방침도 한은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선제적 물가 대응을 등한시한 한은이 딜레마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물가 오르고 외부 경보음은 울리고=김중수 한은 총재는 11일 통화정책방향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책 딜레마와 관련된 질문에 “대외적인 경제 환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고려하면서 중립금리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물가와 외부 경제 충격은 금리 결정에 있어 상충적인 부분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반면 외부 악재에 따른 경기침체가 예상되면 소비 부진, 기업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춰 돈을 푸는 결정을 택한다. 현재는 이 두 부분이 중첩되는 상황이다.
유럽과 미국의 위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물가 역시 최근의 기상이변과 서비스요금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하반기에도 고공행진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한은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4%)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외 경제 여건 분석과 물가 사이에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한은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미국의 초저금리 유지 방침도 한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미국이 초저금리를 지속하면 자본이 신흥국으로 몰려와 국내 물가 등을 자극할 소지가 높다. 물가를 잡으려면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이 경우 ‘내외 금리차(미국과 한국의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국자본 유입→환율 하락→수출경쟁력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성장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한은은 당분간 금리를 계속 동결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투자증권 박종연 애널리스트는 “금융시장 충격이 시간을 두고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기준금리 정상화에는 상당 부분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라증권은 이날 “한은이 내년 2월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이 딜레마 자초 비난도=한은이 좀더 일찍 금리를 올리지 않아 위기 때 금리 대응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지금까지 한은은 금리정책을 하는데 있어서 정부 입장 등을 고려해 좌고우면해 왔다”며 “금리를 올릴 때 못 올리는 바람에 지금의 고물가 상황에서도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중앙은행이 미국과 유럽 상황 때문에 금리를 못 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미리 물가압력을 줄였더라면 지금의 외부 위기에 대응하기가 수월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