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금융 쇼크] “유럽 위기 확산여부가 최대고비… 장기화 대비해야”

입력 2011-08-11 18:29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 주가 대폭락 사태의 고삐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일단 외환시장으로의 전이를 막아 다행이지만 선진국발(發) 불안이 앞으로도 이어질 경우 금융시장은 물론 수출과 소비, 고용 등 실물경제에도 충격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위기의 원인과 본질,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향후 증시 전망 등에 대해 경제 전문가 5명의 의견을 들어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현 세계 재정위기의 근원이자 최대 위험요소는 유럽이다. 유럽은 통화와 재정정책 모두 쓰기 어렵다. 유럽연합(EU) 체제에서는 유로화를 추가 발행할 경우 유럽과 그 외 국가 간 문제는 해결해도 유로존 내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리스 등 위기에 봉착한 나라들은 재정정책을 쓸 여지도 없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규모가 큰 나라로 재정위기가 확대된다면 독일 프랑스까지 위태로워지고 이는 세계경제에 최대 고비가 될 것이다.

그에 비해 미국은 확장적 통화정책을 쓸 수는 있다. 제로금리 상황이지만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양적완화의 여지가 있다. 현재 투자자들은 미국의 디폴트(부도)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재정정책을 통한 추가 경기부양이 어려워 경기 침체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때문에 주식시장보다는 안전자산인 채권 쪽으로 자금이 이동할 것이다.

우리 증시의 외국인 매도세도 그 같은 포트폴리오 조정이라고 보면 된다. 정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떠받치고 있어 추가 혼란은 덜하겠지만 유럽 쪽 위기가 확대돼 유럽계 금융기관에서 빌려온 단기 채무가 일시에 회수되면 심각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금융 당국과 기관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

재정위기는 금융위기처럼 단기에 회복될 수 없다. 중국도 추가 경기부양은 어렵다. 즉, 세계는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재정위기는 금융위기처럼 급속도로 파급되지는 않으므로 더 나빠지기 전에 각 국가가 재정을 정비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올해 안에 국내 증시가 아주 힘 있는 상승세로 돌아서긴 어렵다. 미약하게라도 상승 국면이 찾아오는 것은 연말에나 가능하다. 3분기까지는 약세장일 것이다. 코스피지수 1750선까지 하락과 반등을 거듭하며 바닥을 지루하게 다져나갈 것이다.

금융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증시 폭락은 투자자들의 심리 때문만은 아니다. 양적완화 등 경기부양책으로 나온 정책들이 효과적이지 못했고, 앞으로 비슷한 대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더블딥이라기보다는 저성장 상태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정책적인 측면, 기업들의 실적 등을 참고해 봤을 때 이번 사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는 다르다. 내년 상반기까지 이러한 저성장 상태가 계속될 것이다.

한국 시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대를 기록하고 있고, 고용이나 소비 측면에서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니다. 현재로선 정부나 금융 당국이 특별히 대응할 게 없어 보인다.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나면 물가 등에 문제가 생기는데, 굵직한 파장에 대해서만 대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최대 위험 요소는 미국과 유럽의 경기 둔화다. 미국 경제지표 중에서는 성장률과 소비증가율을 눈여겨봐야 한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거시경제팀장

현 위기 상황은 장기간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은 그리스처럼 이미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나라들의 부실 채권 처리 해법을 전혀 만들지 못했다. 이 경우 그리스 등의 재정위기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재정위기 심화는 부실 채권을 지닌 유럽 은행들의 부실로 전이될 수 있다. 전날 프랑스 은행 주가가 급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국의 경기 둔화도 문제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이 각국의 재정 건전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각 나라들은 신용등급 강등을 우려해 이미 긴축재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들이 선거를 앞두고 있어 강력한 리더십을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불황을 타개할 정책 수단이 없는 셈이다.

해법은 국가 간 정책 공조다.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각국이 나서서 위기를 타개할 강력한 정책 공조에 합의해야 한다. 우선은 각국의 재정을 현 상태로 유지하거나 확장하는 데 합의해야 한다. 독일이나 중국처럼 유동성이 풍부한 나라가 국제사회에 나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금융시장은 현재 과도한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아직 외환보유액이나 단기외채 상황은 괜찮다. 외국 자금 이탈 조짐도 크지 않다.

문제는 정책 공조가 안 돼 경기 침체가 확산됐을 때다. 이 경우 글로벌 자금은 신흥시장(이머징 마켓)에서 이탈할 것이고 한국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고유선 대우증권 글로벌경제팀장

지금의 미국 재정위기는 해결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경우엔 은행 부실을 미국 정부가 신속히 해결해주면서 해소됐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한 상황이다. 정부가 여력이 없어 해결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장기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연준이 저금리 기조 유지 결정을 내렸는데, 연준이 아직 준비가 제대로 안된 것 같다. 이 정도 가지고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힘들고 구체적인 방안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추가 국채매입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런 형태로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돈을 풀어야 경제를 살릴 수 있는데 미 정부 재정은 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까지 이번 사태가 국내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멈추면 좋겠지만 문제는 부실 채권을 가지고 있는 유럽 금융기관으로 파장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단계에서 ‘이제 상황이 끝났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로서도 마땅히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외부 충격으로 발생한 사태인 만큼 금융기관의 유동성을 점검하고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정도 외에는 적극적으로 어떤 수단을 사용하기 어렵다. 외부 요인이 제거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 위기가 연쇄적으로 다른 국가나 금융기관으로 전이되거나 미국 국채 신뢰도를 대폭 떨어뜨리게 된다면 리먼 사태 이상의 큰 충격이 올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기본적으로 금융 현상은 단순히 금융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증폭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번 위기의 발단은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 감축 문제다.

정부가 경제를 지원하는 힘이 줄어들고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에 충격이 주어지면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고 경기부양 등의 안정화 작업을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제약을 받게 된다. ‘뭔가 큰 소용돌이 앞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이것이 소비심리 악화로까지 연결될 것이다.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심지어 프랑스까지 미국의 재정위기가 유럽의 주요국으로 확산될 경우 받게 될 충격은 매우 클 것이다.

다만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은 아직은 높게 보지 않는다. 상반기 경제지표가 안 좋았던 건 부동산 시장 침체 등 미국의 구조적 문제와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공급망의 붕괴 같은 일시적 요인들 때문이었다. 하반기 들어 유가도 내리고 있고, 일본 지진에 따른 여파도 줄어 성장세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 실물경제에 대한 우려가 퍼지면 한국 금융시장의 충격도 점차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시장에 악재가 발생할 경우 우리 시장이 받는 충격은 그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당분간 증권시장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정리=황세원 강준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