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의 野口] 수해, 콜드게임 패

입력 2011-08-11 18:24


비 참 겁나게 온다. 야구광들이 우울증에 걸리기 딱 좋을 시즌이다. 야구를 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어 허망하니까. 야구는 다 좋은데 비가 오면 할 수 없다는 게 취약점인 것 같다. 공이 젖으면 배트도 젖고 글러브도 젖고 마음도 젖고 팬티도 젖는다. 야구처럼 머리로 생각하면서 해야 하는 스포츠는 결코 팬티가 젖은 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야구가 발달한 나라에선 돔 구장을 지어 팬티가 젖는 걸 신경 쓰지 않고도 야구를 하도록 해왔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번쩍번쩍한 돔구장을 가진 외국이 부럽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일단 지금 있는 야구장의 배수 시설이라도 좀 현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여름, 비의 공세가 얼마나 격한지 편안히 관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얼마 전 서울 팀 중에서 대치동과 강남역과 신림동 등이 완패당하는 걸 보고 충격 받았다. 믿었던 우면산도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처참하게 진 것이다. 콜드 게임이었다. 콜드란 춥다(cold)는 게 아니라 실력 차가 너무 커, 경기를 9이닝까지 계속하자면 백만 년이 걸릴 것 같을 때 심판이 선수들을 불러들여(Called) 경기를 끝내는 야구 룰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지만, 서울의 중심부가 집중 공격에 무너지는데도 도저히 막아줄 투수가 없다는 허탈감이 콜드 게임의 패배감보다 컸다. 거기다 태풍 무이파의 공세로 제주와 전라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심한 피해를 입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재산 피해를 당한 분들에게 깊은 애도와 울분의 공감을 표한다. 문제 해결 의지가 박약한 행정부의 고자세가 저지대를 침수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하니 진절머리가 나 정말 답답했다.

내가 거주하는 서울의 수해 대책은 특히 황당했다. 수해방지 예산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라는 논란이 있는데, 그 진위가 어떻든 디자인 서울을 표방하며 한강 르네상스 같은 사업에 치중하는 모습부터가 어이없었다. 돈 없는 서민들의 가구가 툭하면 물에 잠기고 햇빛도 잘 안 드는 반지하 집에 촘촘히 살고 있는 마당에 겉에 보이는 외관만 예쁘게 꾸미면 뭘 하나 싶었다. 노점상을 쓸어버려야 보기 좋은 거리가 되는 게 아니라 비에 잠기지 않는 거리를 만들어야 더 좋은 도시가 되는 것 아닐까. 예산이 삭감되었든 아니든 이번 수해는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사회인 야구로 치면 훈련할 때 전혀 나오지도 않고 야구를 잘 할 노력도 안 하기 때문에 타석에서 매번 삼진이나 당하고, 수비에선 알만 까는 선수가 매번 번드르르한 새 장비를 사 모으려 드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프로 선수들이 걸치는 목걸이며 언더웨어며 보호대 같은 걸 무조건 따라하지만 내실이라곤 없는 어눌한 아마추어 야구 선수와, 멋진 도시를 지향하며 넋 놓고 있다 콜드게임 패나 당하고 있는 오늘의 서울이 다른 게 뭐냐 싶더라는 얘기다. 시설 좋은 현대식 야구장도 몇 개 없는 나라에서 야구의 매혹에 빠져 열심히 그 환희를 즐기는 게 다 허탈한 심정이 될 정도였다. 이래저래 우울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