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발레리나 인형’은 무슨 꿈 꿀까… 작가·기자·성 산업인, 집창촌에 관한 3가지 시선
입력 2011-08-11 18:25
그녀의 방에 갔다. 서울 영등포4가 435번지 24길 2호 집. 그 집 2층에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사람 없는 빈방이다. 정오인데도 햇빛이 깊게 들어오지 않는다. 두 평 남짓한 그녀의 방에 2인용 흰 침대가 놓여 있다. 붉은 벽지에는 손바닥만한 장미꽃이 수놓아져 있다. 침대 맞은편에는 미니 냉장고와 선반이 있고, 선반에는 인형이 놓여 있다. 우아한 자태의 발레리나와 천사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 순수하다. 어두운 방 한구석에는 갈색 곰 인형 두 개가, 벽지에는 어느 무명 화가가 그린 흰 꽃 그림이 걸려 있다. 주인 없는 그녀의 침대에 앉았다 일어났다. 그 방을 나와 문을 닫았다. 그녀는 창녀다.
435번지 24길 2호
지난 9일 오전 9시, 잠에서 깼다. 햇살이 방 한가운데 들어올 때까지 나는 침대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급히 얼굴을 씻고 화장대 앞에 섰다. 코 옆에 난 여드름을 감추려 파운데이션을 아무리 발라도 가려지지 않는다. 짜증을 참는다. 베이지색 치마에 흰색 재킷을 입었다. 편안한 검정색 노트북 가방과 세련됐지만 불편한 사파이어색 가방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다 노트북 가방을 들었다. 다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카락으로 택시를 타고 영등포역 한 커피숍에 내렸다.
서민정(40·여) 작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서 작가는 서울시립미술관이 개인전 비용을 지원하는 ‘엄선된 젊은 작가(SeMa)’ 중 한 명으로 올해 뽑혔다.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때웠다. 커피에선 탄 냄새가 났다.
나는 기자고 그는 작가이므로 나는 물었고 그는 답했다. 독일과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 한국과 타국 미술의 차이, 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서 작가는 쇠락한 철공소와 집창촌, 화려한 신세계 백화점, 작가들의 레지던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영등포역 일대가 재미있다고 했다.
서 작가는 그중에서도 집창촌에 주목했다. 야한 몸짓으로 호객하는 쇼윈도의 공개성과 성매매가 이뤄지는 룸의 폐쇄성이 공존하는 집창촌의 공간적 특수성에 예술적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나는 집창촌의 공간적 이중성과 성을 사는 인간의 이중성, 위선이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그럴듯한 대화가 오갔다.
우리는 커피숍을 나서 영등포 집창촌으로 걸어갔다. 서 작가는 11월 15부터 한달간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 압생트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는 집창촌을 스티로폼으로 축소 재현한 뒤 해체한 조각들로 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지난주 집창촌 도면을 완성한 서 작가는 오늘 방문을 본뜬다고 했다.
나는 밤에 이 골목을 드나들기 겁이 났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쾌했다. 가슴이 부풀어 보이는 두툼한 브래지어를 차고 짧은 핫팬츠를 입은 유리창 너머 ‘언니’들은 천박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언니’들을 고깃덩이처럼 골라대는 축축한 남자들의 눈빛은 더 천박해 보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천박함을 경멸한다. 지적이고 예술적이고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오늘은 이곳이 불결하지 않다. 난 예술 작업을 취재하러 왔으니까. 집창촌 골목에 들어서니 한 남성 업주가 서 작가에게 걸어온다. 자신을 ‘성 산업인’으로 소개했다. 그를 따라 업소로 향했다.
서 작가는 우여곡절 끝에 이 업주를 만났다. 작업을 위해 집창촌 거리를 수차례 지나다녔지만 쉽사리 업소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용기를 낸 서 작가는 지난달 지인과 함께 성 상업인들의 결집 장소인 천막에 들렀다. 2년 전 인근에 종합쇼핑몰인 타임스퀘어가 들어선 뒤 유동인구가 늘어나자 영등포구청은 집창촌을 폐쇄키로 결정했다. 이들은 그곳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서 작가가 사정했지만 업주들은 업소 개방을 꺼렸다. 수차례 찾아와 룸이 아닌 쇼윈도만이라도 개방해 달라는 서 작가의 요구에 한 업주가 말했다. “그럼 예술성이 떨어지잖아?” 이렇게 말한 업주는 서 작가의 열정에 못 이겨 자신의 가게를 개방했다.
업소에 도착했다. 업주가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내줬다. 갑자기 비가 내렸다. 나는 업소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서성이다 비를 맞았다. 업주가 중얼거렸다.
“비랑 친구 사인가?”
그제야 나는 한 발, 업소에 내디뎠다.
그녀의 방
룸이 있는 업소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잠금장치가 된 철문이 있다. 이 문을 열면 복도가 나오고 복도 양쪽에 네 개의 방이 있다. 201, 202, 203, 204호다. 각 방문에는 시간을 재는 타이머가 붙어 있다. 손님이 룸에 머무는 시간에 따라 지불하는 금액이 다르다. 나는 이 방, 저 방을 구경하고 서 작가는 방문에 석고붕대를 붙여 본을 떴다.
방에는 발레리나와 천사 인형이 많았다. 집창촌과 천사, 창녀와 발레리나…. 영원히 교차하지 않을 수평의 기찻길들처럼 아득했다. 그녀는 천사와 발레리나를 꿈꾸는 걸까. 처음 보는 낯선 남자 앞에서 옷을 벗고, 이 방에서 그 남자의 체액을 받는 여자는 침대에 누워 발레리나 인형을 응시하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창녀의 흰 침대에 앉아 그 인형을 한참 바라보았다.
업주가 내가 앉은 침대로 다가왔다. 1층 쇼윈도를 제외하면 이곳에는 쉴 만한 의자가 없다. 나는 침대 이쪽 끝에, 업주는 저쪽 끝에 앉았다. 전깃줄 끝에 앉은, 여차하면 날아갈 새처럼 나는 침대 끝에 위태롭게 앉아 인터뷰라는 걸 하고 있었다. 그가 냉장고에서 ‘옥수수 수염차’ 음료를 꺼내 건넸다. 캔 뚜껑을 열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한 입 갖다댔다. 늘 마시던 것과 같은 맛이다.
업주가 입을 열었다. 어느 지역인지 모를 사투리를 썼다. “장애인, 노인, 욕구 쌓인 영세민들 돈 모아서 여기서 ‘볼 일’ 봐. 있는 놈은 룸살롱 가지만 여기는 싸잖아. ‘볼 일’ 찾는 남자들은 늘 있게 마련이고, 여기 여자들은 돈이 필요하지. 그런 원리 알면 간단해. 성 산업이 왜 안 사라지는지. 그리고 집창촌 사라지고 오히려 강간 많아지면 어떡해? 이곳은 필요악이야.”
그는 성매매를 ‘볼 일’로, 자신이 하는 일을 ‘필요악’으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늘 자기 일을 포장하며 살아간다. 악한 일을 선한 일로, 불필요한 일을 필요한 일로, 하찮은 일을 대단한 일로. 그는 자신의 일이 ‘악’이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악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는 인생은 어떤 것일까, 생각했다.
문득 두려워졌다. ‘언니’들이 사라질 밤거리에서 성범죄자가 많아지면 어쩌지? 나는 그녀들을 경멸했고 성매매를 혐오했지만 그 순간 ‘그녀들’이 ‘필요악’으로 여겨졌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중적이고 애매한.
30분쯤 지났을까, 서 작가의 작업이 끝났다. 나는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섰다. 계단에는 빈 향수병이 버려져 있었다. ‘엘리자베스아덴 5번 우먼 오드 퍼퓸’이다. 나는 ‘이세이미야케 로디세이 우먼’을 뿌린다. 그녀와 나는 향이 다르다.
1층에 내려왔다. 쇼윈도 앞에 놓인 푸른색 플라스틱 의자에 잠시 앉았다. 쇼윈도에 화장품을 담은 케이스가 붙어 있다. 빨간색 립스틱들이 담겨 있다. 대부분 싸구려다. 그녀의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낮의 거리는 한산했고, 타임스퀘어는 높았다. 나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죄인
그녀의 방을 나온 서 작가와 나는 인근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보통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간 강사를 하는 게 전업 작가의 시작 코스다. 서 작가는 그게 싫었다고 했다. 시간 강사를 하면 작업할 시간이 부족하고,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택한 곳이 일본이었고, 다음이 독일이었다. 그녀는 현재 독일 베를린의 베딩에 거주하며 한국을 오간다. 독일은 학비가 싸고 작가들에게 지원 혜택이 많다.
서 작가와 헤어지고 회사에 들렀다 저녁에 퇴근했다. ‘기사를 어떻게 쓰지?’ 고민이 됐다. 애초에 서 작가의 작품을 쓰려 했으나 혼돈스러웠다. 보수적인 성향의 그리스도인인 나는 창녀와 집창촌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옹호해서도 안 된다. 나는 단지 서글펐다. 그 늙은 창녀의 방이.
그날 밤늦게 예배에 참석했다. 다니는 교회 여름 수련회가 열리는 김포시 고막리에 갔다. 성도들은 이미 일렬로 앉아 있었다. 화종부 목사는 사도 바울이 기록한 디모데전서를 강해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