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의 밤’ 맨체스터 르포] 후드티 차림 20대 폭도들 시내 점령
입력 2011-08-10 21:35
“영업 끝났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9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쇼핑을 위해 맨체스터 중심부로 향하던 중 난데없이 가게들이 셔터를 내리느라 분주했다. 평소 자정까지 운영하던 테스코 메트로 앞에는 경비요원 4명이 입구를 막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물어봐도 보안 문제라고만 답했다. 인근 은행들과 쇼핑몰인 안데일(Arndale)까지 문을 닫았다. 통상적인 시위대의 구호도 들리지 않았고, 사람들만 웅성거렸다. ‘또 누가 협박전화라도 했나’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해야 했다.
2시간쯤 지났을까. TV뉴스에 ‘맨체스터 폭동’ 소식이 다급하게 전해졌다. 평소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후드티 차림의 20대 젊은이들이 맨체스터 중심부 마켓 스트리트 입구의 유명 의류점 ‘미스 셀프리지’에 불을 질렀다. 집으로 가는 30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졌던지…. 처음 뉴스는 마켓 스트리트 폭동소식만 나왔는데 안데일 쇼핑몰을 침입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번화가인 딘스게이트(Deansgate)까지 진입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딘스게이트는 맨체스터의 명품 상점들이 늘어선 곳이다.
시위대는 경찰의 방어선을 피해 마켓 스트리트 옆길을 타고 다른 번화가인 세인트 앤 광장과 딘스게이트로 진출했다. 무더기로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흩어져 이동하다 보니, 경찰도 어디를 막아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길거리엔 평소 보기 힘든 경찰차들이 분주히 오갔고, 경찰의 방어선 앞에는 폭도들과 지나가던 시민들과 차량이 뒤섞여 있었다.
시민들은 BBC 등의 보도를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봤다. 인근 주민들은 주택 발코니에서 시위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까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밤늦은 줄도 모르고 바라보고 있었다. 밤 10시40분쯤 헬기가 굉음을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다. 헬기는 폭도들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서치라이트를 켜고 골목을 샅샅이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폭도로 보이는 20대 청년 몇 명은 이를 비웃듯 고함을 지르며 골목을 누볐다. 이 지역은 털 만한 가게는 하나도 없는 주택가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걸로 봐서 이들은 훔칠 게 없어 그냥 지나간 것으로 보였다.
계속되는 TV 보도는 폐허로 변해버린 중심가를 시간대별로 보여주었다. 폭도들은 명품을 파는 매장부터 동네 작은 가게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유리창을 깨고, 약탈한 물건 중에 값어치가 없는 것은 길에다 버리기도 했다. 방송 리포터가 길에서 시위대가 버린 물건을 주워들면서 보여주기도 했다. 밤 11시 이후 주요 도로 길목에는 경찰차들이 바리케이드로 바뀌었고, 밤이 깊어지며 소음도 줄어들었다. 시청 관계자와 시 경찰 관계자의 기자회견도 열렸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과 1960년대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도심테러를 겪어본 맨체스터지만, 오늘 도심의 폭동은 그것과 견줄 만한 비극이다. 시 당국은 조속한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 시민들도 공동체를 위해 복구에 협조해 달라”는 당국의 호소가 이어졌다.
박희승 맨체스터 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