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복지 확대했던 그리스, 지금 고통받고 있어”

입력 2011-08-10 21:57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오후 휴가 중이던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해 경제 관료들을 정부과천청사로 전원 소집했다. 예정에 없던 긴급 회의였다.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판단한 듯 그동안 극도로 아꼈던 말을 작심한 듯 쏟아냈고, 대부분 공개됐다. 말의 포화는 정치권의 ‘복지 경쟁’을 향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 시작과 함께 그리스 얘기를 꺼냈다. 그리스가 1970년대 이후 고속성장과 민주화를 거쳐 복지를 확대하다 위기를 맞았다고 소개한 뒤 “그리스가 10년 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지금 고통 받고 있지 않나. 회복할 수가 없다. 한번 풀어놓은 것을 다시 묶으려면 힘들다”고 했다.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를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정책 탓으로 판단한 것이다.

또 “선거를 치르는 사람은 오늘이 당장 급한 법이지만, 오늘 기성세대가 편하자고 하면 10년 후 젊은 세대에게는 치명적으로 일자리가 줄고, 복지와 세금도 늘어나는 등 너무나 큰 부담을 주는 것”이라며 선거를 앞둔 여야 정치권의 복지 경쟁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의 신용하락 원인을 말할 때도 여러 차례 ‘정치권’과 ‘선거’를 언급했다. “미국 재정 문제도 결국 선거를 앞두고 일어나는 정치권 리더십의 부재다” “재정위기를 극복하려면 특히 정치권에서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런 관점을) 정치권에 알리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등의 말이 이어졌다.

이런 발언은 결국 국내 정치권을 겨냥한 ‘경고’로 보인다. 그리스 위기는 무리한 복지 확대 탓으로, 미국의 위기는 정치권의 선거 의식 행태 탓으로 규정하며 우리도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지금처럼 하면 같은 재정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에 따라 내년도 예산 편성에서 포퓰리즘으로 비칠 수 있는 항목은 최대한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대신 수출 둔화와 일자리 감소에 대비하고, 실물경제 위축을 막는 서민경제 활성화 예산은 최대한 배려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예산 재검토를 지시한 건 아니고 글로벌 재정위기가 실물경제 위기로 확대될 경우를 대비해 보완·수정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