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창현]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하려면
입력 2011-08-10 17:56
죄수의 역설은 게임이론에서 매우 잘 알려진 모형이다. 이 게임에서는 A와 B 2명의 죄수가 다른 방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상대방의 동향을 모른 채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규칙은 이렇다. 둘 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각각 1년형으로 끝나는데 둘 다 상대방의 비리를 폭로하면 각각 5년형을 받는다. 공생이냐 공멸이냐의 두 가지 선택 하에서 당연히 공생이 선택돼야 할 것 같은데 이 이론의 결론은 둘 다 폭로를 선택해 공멸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예를 들어 A가 묵비를 선택해 B를 보호하려 하는데 B는 A의 비리를 폭로해버리는 경우 폭로를 선택한 B는 무죄석방이고 묵비를 선택한 A는 10년형을 산다는 규칙이 이 게임에서 존재한다. 결국 묵비를 선택했다가는 자신이 모든 것을 뒤집어 쓸 가능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둘 다 폭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하는데도 결과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은 곱씹어볼 부분이 많다.
팽창적 재정정책 지양하고
이번에 발생한 미국발 재정위기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미국 행정부와 정치권이 국가채무한도증액을 둘러싸고 너무도 지루한 공방을 벌였고 결국 협상은 타결됐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채무관리 능력을 문제 삼은 신용평가사 S&P는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강등해버렸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국채가 어떤 금융상품인가. 1941년 신용평가사가 설립된 이후 한 번도 최상등급인 AAA를 놓친 일이 없는 세계 최고의 안전자산이다. 미국이 만드는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는 세계 최고 수준을 내주었지만 역설적으로 미국이 만드는 제품 중에 마지막 남은 최고 상품이 국채이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에 최후의 우량 상품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 미 정치권과 행정부, 신용평가사가 ‘최선’을 다했는지는 모르지만 최고의 안전자산으로서의 미 국채의 이미지가 깨져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도출된 것이다. 중국만 1조20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미 국채의 신뢰훼손은 그 자체가 위기이다.
위기국면만 도래하면 우리 시장은 출렁인다. 1997년 외환위기의 상처가 너무 큰 나머지 우리의 가슴은 새가슴이 되어 버렸고 위기국면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조금은 진정되고 있지만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번 위기는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첫째, 적자재정을 통한 팽창적 재정정책은 이제 교과서에서 사라져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국채발행을 통해 팽창적 재정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경기를 약간 부양할지는 모르지만 국가채무 증가를 통해 국가신용도를 떨어뜨려서 경제에 더 큰 부정적 충격을 가한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둘째,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G7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선진국들이 국가채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브릭스(BRICS) 국가들의 역할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G20 체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점검하면서 이들과의 다자간 네트워크를 가동시켜야 한다.
다자간 네트워크 가동해야
셋째, 효율적 외환관리를 도모하는 동시에 재정건전성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역할에 대한 감시가 강화돼야 한다. 글로벌 위기 이후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마저 정치가 국익에 치명상을 가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 최적의 의사소통을 통해 최악을 피하는 지혜로운 자세를 견지하도록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이 모든 조치들이 어우러질 때 위기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취해지지 못한다면 아차 하는 순간 더 큰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면을 직시해야 할 때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