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강정마을에서 정치인들이 왜 설치나
입력 2011-08-10 17:39
“4년 전에 확정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제주도 서귀포 시내에서 서쪽으로 7.5㎞ 떨어진 강정마을에선 해군기지 건설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양측 입장을 대변하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내걸려 있다. “좌파·종북 세력은 물러가라, 제주도해군기지 강력 추진하라” “세계적 청정해안에 웬 군사기지인가, 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하라” 하루가 멀다 하고 찬성 혹은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와 제주도에 사는 지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강정마을 대부분 주민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지만 도민 다수는 찬성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제주도에서 활동 중인 한 언론인은 “육지에서 건너온 정치인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반대를 부추기다 보니 반대 목소리가 높아 보이지만 말 없는 다수는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에 반대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정부가 하는 일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대운동을 무조건 비판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은 오래 전에 결정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사정이 다르다. 건설계획이 확정돼 처음 공표된 것은 2007년 5월. 4년이 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2009년에는 기지 건설을 지지한 김태환 당시 제주지사를 상대로 주민소환 투표가 실시됐다. 그러나 투표율이 11%에 그쳐 개표 성립요건(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조차 채우지 못했다. 반대 의견이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작년 7월에는 제주도민 450명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해군기지 건설계획 취소청구소송이 서울행정법원에서 패소해 기지 건설의 적법성까지 인정받았다. 작년 11월에는 기지 건설을 반대했던 우근민 제주지사가 ‘수용’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고서야 공사가 시작됐다. 진통이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등 일부 반대세력이 강정마을로 몰려들면서 지난 6월 공사가 중단됐다. 건설 현장을 점거해 몸으로 공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즈음 정치인들이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주말 야5당 지도부는 강정마을을 방문해 해군기지 백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이 자리엔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이며, 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국가 경영에 뜻을 둔 사람의 언행으로는 아무래도 가벼워 보인다.
해군기지 반대론자들은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경우 중국을 자극해 우리 안보에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남방해역 방어를 위해 우리 땅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데 왜 중국 눈치를 봐야 하는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무장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며 “제주도 해군기지는 우리 안보에 필수”라고 강조했었다. 실제로 우리 군으로서는 전력증강을 서두르는 중국과 일본의 해군력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중국 등이 해군기지 건설을 못마땅해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입만 열면 자주(自主)를 외치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왜 사대사상에 빠져있는지 묻고 싶다.
야5당 등은 해군기지가 주변 해양생태계를 훼손해 관광지로서의 명성을 잃게 할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해묵은 생떼일 뿐이다. 정부는 2007년과 2008년 4계절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했으며, 반대 측 환경단체가 추천한 용역기관과 함께 생태조사를 한 결과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세계적 휴양지이자 미항인 미국 하와이, 호주 시드니, 이탈리아 나폴리에도 해군기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현재 해군기지 사업은 총 사업비 9776억원 가운데 14%인 1405억원이 투입돼 부지수용과 방파제 구조물 제작장 및 현장사무소 설치가 완료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지 건설을 백지화하라는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더 이상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앞만 보고 갈 때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