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명품신드롬

입력 2011-08-10 17:38

45억 달러. 올해 우리나라 명품시장 규모다. 원화로 환산하면 4조8000억원 정도. 도쿄에 이어 아시아의 두 번째 명품 소비도시가 서울이란다.

우리 사회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은 ‘명품신드롬’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길거리를 오가다보면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해외 명품들이 넘쳐난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과거에는 상류층의 중년 부인들이 주 소비자였으나 어느새 10대까지, 남성들까지 확산됐다. 명품을 장만하기 위한 ‘명품계’가 성행하고, 유럽으로 여행 가 샤넬 핸드백을 사오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남길 수 있다는 이른바 ‘샤테크(샤넬+재테크)’도 퍼져 있다. ‘명품 사랑’이 남다르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경제적 부담을 무릅쓰고 너도나도 명품을 소유하려는 이유는 뭘까.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소비 형태를 과시형, 질시형, 환상형, 동조형 4가지로 구분한다. 과시형은 신흥 부유층에서, 질시형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중산층에서 각각 나타난다. 그리고 환상형은 젊은층에서, 동조형은 인기 연예인을 모방하려는 10대들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그럴듯한 분석으로 보인다.

이렇게 좋은 시장을 유명 브랜드 업체들이 놔둘 리 없다. 앞다퉈 국내에 매장을 열고 있다. 또 대부분의 명품 업체들은 고가 마케팅 전략을 고수한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우리의 구매패턴을 악용한 것이다. 10∼20대를 겨냥해서는 다소 낮은 가격대의 ‘입문제품(entry level item)’이란 것을 도입해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이쯤 되니, 명품 한두 개 갖고 있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눈 없을 것이다. 구매한 명품을 통해 일종의 나르시시즘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분수를 모르고 더 큰 만족을 위해 끊임없이 명품에 탐닉하는 경우가 문제다.

지난 9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20대 여성이 구속됐다. 남자친구들의 신용카드로 명품을 쇼핑하는데 1억원 이상 사용한 것도 부족해 컬러복합기로 10만원권 수표 등을 위조해 쓰다 철창신세가 된 것이다. 앞서 회삿돈 6억5000여만원을 빼돌린 뒤 명품 구입 등에 흥청망청 쓰다 구속된 중소업체 여직원도 있었다.

법을 어겨서라도 ‘명품족’으로 살아야겠다는 과욕이 빚은 비극이다. 하지만 100% 개인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명품과 능력을 동일시하는 우리 사회 일각의 못된 분위기가 이들을 명품병에 걸리게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듯싶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