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형통코드
입력 2011-08-10 18:05
창세기 39장 1∼6절, 19∼23절
우리 모두는 손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Midas)적인 형통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형통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형통이 아닙니다.
창세기 39장을 보면 성경은 요셉을 향해 ‘형통한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요셉에게는 세상적인 형통의 조건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형통한 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은 단 한가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코드입니다.
성경적 형통과 세상적인 형통은 세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적인 형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형통을 지향하지만 성경적 형통은 주변사람들을 복 받게 만드는 수도꼭지 형통의 모습을 보입니다. 수도꼭지를 통해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급되듯 나는 물론 내 주변 사람들을 복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상은 맹목적 형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형통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삶에 형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에게 형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범사에 주시는 형통입니다. 내가 주도하는 형통은 시편 73편에 나오는 악인의 형통처럼 파멸의 곳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은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범사에 주시는 형통입니다. 때로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올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뿐입니다.
우린 흔히 형통을 말할 때 내가 어떤 자리에 있고, 그 자리가 나를 어떤 신분으로 만들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셉의 자리를 보십시오. 그는 노예의 자리, 죄수의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 속에서는 절대 그 자리가 형통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형통의 자리로 보았습니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그곳에 두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형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두신 그 자리가 나를 통해 이루실 형통의 자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과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보디발과 간수장에게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 전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 그 자리가 하나님이 부으시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은혜의 자리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자리를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두신 바로 그 자리가 나의 역할의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요셉을 그 자리에 두시고 그를 통해 복을 주시는 이유는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면 요셉이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때 주인이 그에게 주는 것이 바로 역할입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에게 간수장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그에게 맡긴 것이 바로 역할이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 자리에 두신 이유는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자리가 천하던, 귀하던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역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두신 그 자리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눈이 회복될 때 우리는 형통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광재 목사 (광주 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