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패닉] 개미들 피말린 V자 증시… ‘공포지수’ 최고치

입력 2011-08-09 22:47


9일 오전 10시41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13층 코스닥시장운영팀. 사무실에 비치된 체크단말기 3대에 일제히 ‘CB(서킷브레이커) 발동’이라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전날 코스닥지수 종가(462.69)보다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계속되자 전산 시스템이 자동으로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전 종목의 거래를 일시 중단시킨 것이다.

떨어지는 지수를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직원들의 행동이 분주해졌다. 직원들은 서킷브레이커 발동 원인을 ‘미국 신용등급 하향 충격 및 세계경제 둔화 우려’로 설명해 즉시 공시했다. 곧이어 투자자들의 문의 전화가 거래소로 빗발쳤다. “서킷브레이커가 도대체 뭐냐”는 질문에서부터 “내 돈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까지 다양했다.

거래소 코스닥시장운영팀 관계자는 “전날 미국 증시가 크게 하락해 지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면서도 “연 이틀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정신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중 ‘사이드카’ 발동을 알렸던 주식시장운영팀 관계자는 “휴가계획도 취소하고 비상대책반을 만들어 대응하고 있지만, 요즘처럼 장세가 안 좋으면 직원들도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한숨지었다.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 1층 객장에는 중년의 주식 투자자 30여명이 모여 근심어린 얼굴로 주식시세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코스피지수가 하락으로 출발, 오전 11시21분 184포인트 넘게 떨어지며 1684.68을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1600까지 가는 게 아니냐”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연이은 급락에 오늘만큼은 시세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김모(53)씨는 “신문·방송을 보면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투매했다고 하던데, 이런 상황에서 안 파는 게 이성적이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6일째 급락이 계속되자 각종 증권 포털사이트와 증시 동호회 카페 등에는 급락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투자자들의 질문과 답변이 잇따랐다. 재테크 실패로 인한 기구한 사연들도 많았다. 한 투자자는 “남자친구의 주식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돼 결혼마저 미루게 됐다”고 전했다. 직장 생활 2년차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정모(29)씨는 “하반기 증시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세자금을 마련하려고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다 날렸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도 급락이 멈추지 않아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한 증권사 직원들 때문에 여의도 식당가는 도시락 배달 특수를 누렸다. 폐장을 앞두고 빠르게 낙폭이 줄어들며 증시가 ‘V’자를 그리자 낙심했던 투자자들도 조금씩 활기를 찾는 모습이었다. 오후 1시56분쯤 전광판의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회복하자 객장에 모인 투자자들은 “비가 올 땐 떨어지더니, 햇빛이 드니까 이제 다들 조금씩 사고 있나 보다”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나대투증권 남대문지점 이재혁 차장은 “180포인트가 빠졌을 때는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였지만, 장 막판에 주가가 올라가면서 매수 의견을 묻는 고객들의 전화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장 막판 약간 진정됐지만 투자자들의 공포는 최대 수준이었다. 향후 증시 변동성에 대한 예측을 반영,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이날 2009년 4월 지수 산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스피지수와 정반대로 움직이는 이 지수는 전날보다 42.12% 오른 50.11로 마감했다.

그간 “시장이 바닥을 확인했다”며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던 애널리스트들은 종일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자동차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라고 며칠 전 조언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며 “앞으로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며칠간 장밋빛 전망에 대한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가 많았다”며 “오늘은 오히려 항의가 적었는데, 투자자들이 자포자기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