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마당을 나온 암탉’

입력 2011-08-09 17:57

토종 애니메이션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화제다. 지난달 27일 개봉해 11일 만인 8월 6일 78만명을 모아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07년 ‘로보트 태권브이’ 디지털 복원판의 72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오늘쯤 100만 관객을 달성하고, 손익분기점 150만명 돌파 등 기록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기록은 값지다.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신동헌)에서 출발해 ‘로보트 태권브이’(1976·김청기), ‘태권동자 마루치아라치’(1977·임정규)를 거쳐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1996·임경원)의 계보를 잇는 히트작이다. 비슷한 때에 개봉한 블록버스터들에도 밀리지 않은 뚝심이 돋보인다.

한국영화가 눈부신 성장을 하는 동안 애니메이션 분야만 처진 것은 마당을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리 이야기’가 안시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지만 흥행에 실패한 것은 낙후된 프로듀싱 환경 때문이다. 할리우드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수백만명을 동원하는 데 비해 국산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에 비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원작, 기술, 관리의 삼위일체가 이룬 승리다. 황선미가 쓴 원작이 이미 100만부 넘게 팔린 데다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실제로 영화관에서는 부모와 아이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원작에 없는 수달을 넣어 웃음보를 터뜨리게 하거나, 오리 파수꾼 대회를 추가한 것은 영화적 장치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은 오돌또기의 120명 애니메이터들은 2년간 12만장의 그림을 그렸다. 날짐승들의 꿈과 도전, 희생과 배려를 나타내는 데는 한국의 자연색을 제대로 활용했다. 배경은 경남 창녕의 우포다.

명필름은 시나리오 개발과 투자유치 및 제작관리를 맡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제작한 명필름은 충무로의 명문답게 31억원 투자금을 모았고 롯데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배급사를 뚫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힌 공로가 있다.

애니메이션은 국경을 쉽게 넘는 글로벌 콘텐츠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음반과 그림책, 캐릭터 상품 등이 제작되고 있다. 이달 말에는 중국의 2000여개 스크린에 걸린다. 이미 원작의 중국어판이 출간됐으니 또 다른 한류의 시작을 본다. 주의 깊은 사람은 극중 선명한 복수초를 보았으리라. 이 영화가 바로 얼음 속에 피는 꽃처럼 귀한 존재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