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블랙먼데이] S&P, 추락한 ‘위상’회복 위해 선진국에 대반격?
입력 2011-08-08 21:33
세계 경제 대통령이 바뀌고 있다. 경제 규모 1, 2위인 미국과 중국도, 선진국들이 중심이 되는 G(Group)로 명명되는 G5, G7 등의 경제협력체도 아니다. 20여년 동안 국제금융시장을 호령하며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젠 ‘국제신용평가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관련 시장의 95%를 차지하고 있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평사들은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공범, 도덕적 해이, 면피성 조치라는 논란과 비난이 잇따르며 이들의 위신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이 때문에 미국의 부채 상한협상 국면과 유럽의 재정위기를 틈타 떨어진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선진국들을 향해 대반격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들에게 권력 누가 줬나=3대 신평사의 시작은 미약했다. 철도 등 분야별 채권 평가가 고작이었다. 전성기는 1975년부터였다. 당시 오일쇼크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투자은행, 증권사의 안정성을 평가해야 했는데 이들에게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의 지위를 주고 투자적격 등급을 평가하게 하면서 날개를 단 것이었다. 이때부터 국가도 국채를 발행하려면 빅3 신평사의 신용등급을 받아야 했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은 탄생했다. 하지만 신평사의 콧대를 높여준 데는 피평가기관의 역할도 한몫했다. 각국 정부가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자국 경제 상황을 적극 설명할 뿐 아니라 신평사들을 떠받들며 선물공세 등 로비를 벌이면서 범접할 수 없는 권력을 쥐어줬다는 얘기다.
◇전횡 도(道) 넘었다=‘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듯 신평사의 평가나 전망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1980년대 남미 외채위기, 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 및 미국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을 거치면서 신평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이 더 큰 재앙을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 개발도상국에는 선진국 위험을 축소하기 위해 일부러 나쁜 평가를 내린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개도국이 더 불안한 것처럼 보이게 만듦으로써 선진국이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게끔 하는 착시현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비단 국가에만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 미국 기업인 엔론, 월드컴 파산 사건에서도 부실평가는 낱낱이 드러난다. 이들 기업의 신용도를 파산 불과 수주 전까지도 양호하다고 판정했다가 이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수십억 달러의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에 신평사를 상대로 한 소송 건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 최대 연금펀드인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은 2006년 매수한 13억 달러 규모의 구조화 투자상품에 대한 부정확한 평가로 1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며 3대 신평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매번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이들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이러한 횡포 속에 신평사의 도덕 불감증이 곳곳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 신평사의 주요 수입원은 기업이나 금융기관 등 채권 발행자에 대한 평가를 통해 받는 수수료다. 상위 등급일수록 수수료가 비싸게 책정되는 구조 탓에 가급적 높은 등급을 주려는 유혹을 떨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반격, 승리하나=2008년 미국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신평사들은 주요 미국 금융사뿐 아니라 미국 국가에도 최고등급을 유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신평사들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이 좀 더 선제적인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가 더욱 커졌다며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이에 파생상품에 대한 위험도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비등했다. 여기에다 올해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불거지자 그리스 신용등급을 줄줄이 정크 수준으로 낮춰 위기를 조장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런 까닭에 S&P가 미국 신용등급을 강등함으로써 반격에 나섰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실제 설립 이래 어떤 우려에도 미국에만큼은 최고등급을 부여했던 S&P가 최근 디폴트 협상을 무사히 마치고 한숨 돌리려던 미국 정부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고, 그대로 세계 금융시장이 수렁에 빠졌다.
이 때문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하면서 앞으로 각국 신용등급의 평가기준이 더욱 엄격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100년 넘게 국제금융시장을 호령한 신평사들이 위상 찾기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