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블랙먼데이] IMF 때 유독 한국에 가혹한 평가 “피눈물 났다”
입력 2011-08-08 18:36
“피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4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외환위기 이후 13년 만에 단행된 무디스의 한국 신용등급(A1) 상향 조정 발표에 대한 소감을 표현한 말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횡포와 저주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약소국으로서 갖는 설움과 자책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3대 신평사들은 1997년 11월 위기 직전까지 우리나라를 ‘투자 적격’ 국가로 분류했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AA-, 무디스 A1, 피치 AA-로 모두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로 분류했었다. 하지만 외화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전후인 그 해 11∼12월 두 달 만에 이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6∼12단계 내려 숨통을 조였다. 그렇게 한국 국채는 ‘정크 본드’(쓰레기 채권)가 되고 말았다.
이후 눈 깜짝할 사이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후폭풍이 일었다. 외국 자본은 순식간에 빠져나갔고, 외환보유고가 바닥난 우리나라에는 빚 독촉장들만 남게 됐다. 같은 시기 외환위기를 겪은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지나칠 정도로 가혹했다. 한 금융권 인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신평사들이 우리를 보는 시선 자체가 고압적이었다”며 “지금 생각하면 분할 정도”라고 했다. 국제금융을 담당했던 한 재정부 고위직 출신인사는 “무디스 등 신평사들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사무관이나 겨우 만나고 가는 처지였으나 위기가 닥치면서 상전 대접을 받는 위치로 격상했다”고 말했다.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 정부는 극심한 신용 경색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불철주야로 뛰었다. 그런데도 또다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과 북한발(發) 핵 이슈가 터지자 무디스가 한국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수정하려 한다는 예측이 나왔다. 재차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민간 기업을 상대하기 위해 당시 반기문 외교보좌관을 급파, 설득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3대 신평사의 문턱이 닳도록 오가며 고개를 숙였던 ‘을’의 반격이 조금씩 먹혀들고 있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도 있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인 불신이 깊어져 ‘신용평가 무용론’까지 제기되자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 재정부 관계자는 “등급산정 관련 실사를 나오는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확실하다”며 “과거 일방적이고 오만했던 태도와 달리 최근엔 귀를 기울이고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똥이 무서워서 피한다기보다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지 않느냐”며 “여전히 피평가기관으로서 책잡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