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후지모토 도시카즈] 우리의 뿌리를 찾아서

입력 2011-08-08 17:32


“한국역사 탐방에서 만난 여성 가이드, ‘당신은 가야 사람이에요’라고 말해…”

여름휴가철을 맞아 한국을 찾는 일본여행객이 늘어나고 있다. BB 크림과 달팽이 크림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사람도 많겠지만 역사탐방을 위해 한국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역사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관심 있는 것이 고대사다. 섬나라 일본열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됐는지, 우리의 조상은 어디서 왔는지, 천황은 어떻게 해서 일본을 통일했는지, 일본의 고대사는 수수께끼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한국 역사탐방은 그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찾는 여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불교를 비롯해 많은 문화를 일본에 전한 백제의 도읍지 부여, 공주는 일본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나는 갈 때마다 백마강에 띄운 배 위에서 삼천궁녀가 뛰어내린 낙화암을 바라보면서 이 강의 하구에서 벌어진 일본원군과 나당연합군 간의 해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일본원군이 대패한 이른바 백촌강(百村江)의 해전은 일본사람이라면 다 아는 고대사의 일대 사건인데 왜 일본군이 바다를 건너 이렇게 먼 데까지 원군을 파견했을까, 혹시 천황가와 특별한 관계가 있던 게 아닐는지, 그런 생각도 해 본다.

한국이 해방되고 나서 최대의 발굴의 하나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공주의 무령왕릉도 몇 번이나 가봤다. 무령왕릉에 대해서는 2001년에 현 일본 천황이 스스로 “칸무천왕(8세기)의 생모가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일본의 역사서에 기술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는 그 정도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과 백제의 교류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증거물이 있다. 바로 칠지도다. 칠지도에는 백제왕이 왜왕에게 보낸 것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왜왕은 아직 비밀의 베일에 싸여 있지만 백제왕은 근초고왕이라는 게 정설이다. 때마침 KBS방송에서 드라마 ‘근초고왕’이 방영됐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부여, 공주에는 자주 갔는데 아직까지 근초고왕이 살던 위례성을 찾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도시 서울에 고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니! 휴일에 찾은 풍납토성을 보면서 놀랐다. 풍납토성은 몽촌토성과 함께 근초고왕이 살고 있던 위례성의 최유력 후보지라고 한다. 둘레 4㎞의 타원형을 한 토성은 지금은 2.7㎞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잘 정비돼서 토성에 따라 시민들의 산책로가 마련돼 있었다. 공주와 부여밖에 몰랐던 나에게 백제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내가 한국의 고대사에 관심을 갖는 큰 이유가 실은 하나 더 있다. 나는 세토나이카이에 떠 있는 외딴섬에서 태어나 자랐다. 3000명이 살고 있는 우리 섬은 히메시마(姬島)라고 한다. 직역하면 공주 섬이다. 8세기에 만들어진 일본최고의 정사(正史) ‘일본서기’에는 우리 섬에 얽힌 설화인 의부가라국(意富加羅國)의 왕자 쓰누가아라사토(都怒我阿羅斯等)와 처녀의 이야기가 나온다. 히메시마(姬島)는 히메코소사(比賣語曾社)에서 딴 이름이다. 우리 섬에는 지금도 히메코소사라는 신사가 있다.

이 설화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학자에 의하면 의부가라국은 가야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설화지만 혹시 우리 섬의 뿌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도대체 가야가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나는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을 모시는 김해를 찾았다. 사건은 1년 전의 두 번째 김해 방문 때 일어났다. 자원봉사로 안내해 주신 여성가이드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정말 일본사람이냐고 물었다. “왜요?”라고 되물었더니 그 여성이 “당신은 일본사람이 아니에요. 가야사람이에요”라는 것이었다. 마치 영한 점성술사를 만난 것 같았다. 우리 고향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8월 중순이 되면 일본은 최대 명절의 하나인 오봉을 맞이한다. 며칠 전에 고향 후배한테서 귀성하면 강연을 좀 부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연의 제목이 금방 떠올랐다. 바로 ‘가야의 섬’이다. 여성가이드의 이야기도 꼭 할 생각이다.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전 NHK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