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8월의 그늘
입력 2011-08-08 17:39
며칠 전, 회사 옆자리에 앉아 있는 후배의 책상에서 책들이 무너져 내렸다. 책꽂이 위에 층층이 쌓아올린 서적과 팸플릿이 들쑥날쑥 서로 귀가 맞지 않아 늘 위태로워 보였다. 책들도 세상을 떠나고 싶은 모양이군, 이라고 농담을 했을 때 떠오른 것은 지난달 발생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였다. TV로 본 산사태 동영상의 이미지는 열흘 이상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 삶이 위기의 연속이라는 지속적인 경고음을 내고 있다. 책 사태에서 산사태로 전이되는, 단 1초도 걸리지 않는 연상 작용엔 위기에 대한 잠재의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7월에 일어난 산사태의 이미지가 왜 8월에도 여전히 계속되는가. 그건 우리의 마음속엔 어떤 기억의 그림자들이 여전히 배회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그림자라는 사실에 주안점이 있다.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한순간에 지나간다.
과거는 인식 가능한 순간에 인식되지 않으면 다시 볼 수 없게 사라지는 섬광 같은 이미지로서만 붙잡을 수 있다고 말한 이는 독일의 역사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이다. 그에 따르면 과거를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원래 어떠했는가’를 인식하는 일을 뜻하는 게 아니라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치는 어떤 기억을 붙잡는 것을 뜻한다.
매년 8월이 돌아오면 한국과 일본은 과도하다 싶을 만큼 민족주의의 옷으로 갈아입는 걸 목도하게 된다. 울릉도를 방문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려던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들의 방한이 김포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좌절되고, 이를 규탄하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피켓을 들고 공항 청사 앞에서 방어막을 친 것은 8·15 광복절을 앞두고 불거진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적 힘겨루기로 비친다. 한국의 해방과 일본의 패전을 함축하는 8월 15일은 두 역사의 몸체가 하나로 연결된 샴쌍둥이의 이율배반인 셈이다.
이 이율배반의 역사적 의미는 위험의 순간마다 과거의 이미지를 붙들려는 현상이 한·일 양국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난다는 데 있다. 그건 광복 66주년을 맞는 올해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벤야민이 말하는 그 위험의 순간이란 8·15를 직접 경험한 역사의 당사자에게뿐만 아니라 그 역사의 수용자인 후예들에게도 대물림된다. 바로 그렇기에 역사의 당사자나 역사의 수용자에게 그 위험은 지배계급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인 것이다. 여기에 민족주의의 맹점이 있다.
매년 광복절 즈음이면 TV에서 서로 상충된 두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곤 한다. 하나는 태극기를 손에 든 한국인의 만세 물결이며 다른 하나는 히로히토 일왕의 패전 선언에 눈물을 흘리는 일본인의 통곡 물결이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만세 물결의 후예인 반면 일본인은 통곡 물결의 후예인 것이다. 다만 엄밀히 따져볼 때 한국인은 전승국의 후예가 아니라 전승국이 가져다준 전리품의 수혜자라는 사실이 여간 씁쓸하지만 어쨌든 만세와 통곡 사이에 드리운 것이 광복절 즈음이면 더욱 짙어지는 8월의 그늘인 것이다.
일본의 보수 정치인과 보수 학자들은 8·15가 다가오면 66년 전 패전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의 순간을 떠올리며 더욱 우경화하는 경향이 있다. 만세의 기억보다 통곡의 기억은 감정의 기제가 더욱 복잡하다. 그 감정의 기제에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이 보여준 원조 같은 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역사의 기억은 뒤엉켜 있다. 기억은 뒤엉킨 세탁물이다. 한 세탁물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순간, 원하지 않는 세탁물도 같이 딸려온다. 흘러간 역사를 반추할 때, 지나간 삶에 대한 고통이 함께 수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도 뒤엉킨 세탁물이다. 그렇기에 한·일 양국의 역사를 횡적으로 연결할 때만이 민족주의적인 눈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횡적 연결. 그것이 한·일 양국의 후예들에게 남겨진 과제가 아닐까.
정철훈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