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110)
입력 2011-08-08 09:13
존재 자체가 'vacances'였던 예수!
때는 바야흐로 바캉스(휴가)철이다. ‘바캉스’의 스펠링은 ‘vacances’인데 그 어원이 라틴어 ‘vacatio’란다. ‘vacatio’란 뭔가? ‘텅 비워 낸다’라는 뜻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존재 자체가 ‘vacances’였다. [無의 自由]를 누리시던 분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바라지만 無는 싫어한다. 無는 언제나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無識, 無智, 無錢처럼 [無]는 불안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자유는 無의 자유다. 無에서 자유가 나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유를 내버리고 영원히 안정된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기성 가치에 굴종하기도 하고 거대한 조직이나 기구 또는 회사에 자기를 내맡기기도 한다. 無를 포기하고 有에 자기를 내던지는 것이다. 자유는 계속 불안과 공포에 위협당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하려면 자유해야 하고, 자유는 용기에서 온다는 페리클레스의 말을 다시 생각할 때, 그 용기는 과연 無가 주는 불안과 공포로부터의 용기다.
몇 년 전 나는 無의 自由를 자각했다. 이제는 그 자유를 버릴 수 없어서 언제나 쓸쓸하게 산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살기를 애쓴다. 이 길밖에 없으므로 이 길을 가고 있다. 사실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존재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의 無를 자각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걸 일깨워 주기 위해, 내가 하나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언제나 미완성이고 결여체이며 허공이요 無라는 것을 일깨우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목사로 사는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터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