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 된 재외국민 선거] “재외동포 몫 국회의원자리 들먹… 교민들 분열 조짐”
입력 2011-08-07 22:37
미국 워싱턴 DC 인근 북버지니아 지역에서 교민단체 일에 관여하고 있는 교민 A씨(55).
10년 이상 미국에서 살아온 그는 애당초 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순수하게 고국을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참정권이 현실화되면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갈라져 있는 교민 단체들이 내부적으로 또 갈리고 있다” 정치적 견해에 따라 분열된다는 것이다.
A씨는 “사실 보통 교민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재외국민 투표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면서 “교민 단체에서 목소리 큰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국내 정치인들이 오면 떠들어대니 실제 이상으로 관심이 있는 것처럼 증폭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황당한 일도 생긴다. 지난달 한나라당이 임명한 재외국민위원장은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이다. 재외국민위원장은 재외국민 참정권 문제를 총괄하는 자리다. 미국 국적자는 당연히 투표권이 없다. 국내법상 당원이 될 수도 없다. 일부 교민단체 간부들이 표를 내세워 각 정당에 재외국민 몫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교포 단체들의 간부 중 상당수는 미국 시민권자들이다.
여기에는 국내 정치지도자들이나 국회의원들이 미국을 방문해 은근히 정치권 영입을 흘리면서 지지를 호소한 탓도 있다. 이미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메릴랜드주 등 워싱턴 교포사회에서는 ‘어느 당이 미주 교민사회에 비례대표 의원 자리를 주겠다고 확실히 약속했다’ ‘비례대표 후보로 유력한 누구는 곧 미국적을 포기하겠다고 한다’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아직 교민 사회의 선거 관련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거를 겨냥해 각종 단체가 조직되려는 움직임이 있고, 사전 선거운동 조짐도 있다. 미국 시민권자 교포들이 불법 선거운동을 한다면 국내법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 영주권자들은 법적으로 한국 국민이어서 국내법 적용이 가능하나, 이에 불응하면 사실상 조사와 처벌을 할 수 없다.
단속도 어렵다. 워싱턴 DC와 버지니아, 매릴랜드, 웨스트버지니아주 일대를 지난 4월 중앙선관위에서 파견된 주미대사관 재외선거관 혼자 관할하고 있을 뿐이다. 국내에서 이곳을 방문하는 정치인들이 불법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지 모니터링하는 수준밖에 할 수 없다.
드넓은 미국땅에 설치되는 투표소가 12곳밖에 안돼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투표율 저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차 모의 투표 때 캘리포니아 이외의 주(州)에서 LA 총영사관 투표소에 온 유권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LA 총영사관이 관할하는 투표 지역은 남부 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 뉴멕시코주 등이다.
그래서 교통 편의를 제공하거나 우편투표 도입을 검토되고 있으나 선거법 위반 논란이 있다. 투표소를 많이 늘리는 방안도 비용 등의 문제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A씨는 “재외국민 참정권이라는 명분은 참 좋다. 하지만 재외국민들이 오히려 현지 국가의 정치나 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뿌리를 박는 것이 교포 사회를 위해서나, 모국의 국력 신장을 위해서나 훨씬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