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묵묵부답

입력 2011-08-07 17:34

정끝별 (1964~ )

죽을 때 죽는다는 걸 알 수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죽는 거야?

죽어서도 엄마는 내 엄마야?

때를 가늠하는 나무의 말로

여섯 살 딸이 묻다가 울었다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는 죄도 죄일까

깨지 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

마흔 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더 이상 빚도 없고 이자도 없다

죽어서야 기억되는 법이다

이젠 너희들이 나를 사는 거다

어둠을 가늠하는 속 깊은 흙의 말로

여든 다섯에 아버지는 그리 묻히셨다

(하략)


깜찍하면서도 중후하다. 여섯 살과 마흔 살과 여든 살의 관점의 차이는 나무와 물과 흙의 차이다. 이 시의 질문에는 답이 필요 없다. 묵묵부답이 답이다. 그러나 지면에 소개한 이상 뭐라고 말을 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이 시를 읽다보니 죽음으로 향해 있는 삶이 엄청나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냐고,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열심히 나무에 물을 주라고….

임순만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