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말씀묵상 (Lectio Divina)
입력 2011-08-07 17:50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누가 태초를 ‘한 처음’으로 옮겼다. 순우리말을 쓰면서 태초라는 뜻을 새삼스레 새겨보게 만든다. 맨 처음, 참으로 아무 것도 없었던 때, 아니 시점을 말하는 ‘때’라는 것조차 없었던 그야말로 절대 무의 상황, 그때 무엇이 있었을까? 빅뱅이 있었다고 하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대답이다.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느냐는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새번역성경으로 3절까지 읽어보자. 평소와는 다른 번역으로 읽으면 생각을 자극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니 좋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소금인형이 바다를 처음 보게 되었다. 바닷가에 섰다. 넓고 너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어머니 품처럼 잔잔하고 평안하다. 눈의 광각을 다 벌려도 바다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본다. 바다는 수평으로만 아니라 위로도 연장된다.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수평선이 조금만 흐릿해지면 바다와 하늘은 하나가 된다. 바다가 하늘로 확장되어 머리 위를 덮는다. 너르고 높은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바다에 안기고 싶다.
소금인형이 바다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니?”
대답이 없다.
갑자기 세찬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다.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서 캄캄해진다. 바닷물이 용솟음친다. 파도가 거세게 일어난다. 우레가 친다.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소리에 귀청이 아프다. 번개가 치면서 공간을 가른다. 조금 전 바다와는 전혀 딴판이다. 소금인형은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다. 바다와 하늘과 우레와 번개가 온통 다 섞여서 거대한 힘이 되어 빠르게 움직인다. 대기를 찢고 가르는 소리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밝음과 어둠을 교차시키는 빛이 춤춘다. 폭풍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다.
소금인형이 겁에 질려 소리친다.
“너는 누구니?”
대답이 없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다가 잔잔해졌다. 소금인형은 바닷가에 앉았다. 그렇게 물어봐도 말 한마디 없던 바다가 비로소 말한다.
“네 얘기를 해봐. 얘기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알게 되는 거야.”
소금인형이 자기 얘기를 했다, 바다는 듣고. 바다도 얘기했다. 바다가 해주는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소금인형은 거기에 빠져들었다. 한참 얘기하다가 바다가 말했다.
“자 이제, 손을 잡아보자. 손을 내밀어봐. 조금 더…. 우리 서로 한 번 안아보자….”
소금인형은 바닷물에 손을 담갔다. 발을 들여놓았다. 조금씩 바다의 품에 안겼다. 소금인형은 바다와 깊이 얘기를 나누었다. 둘의 얘기는 끝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잡을 수 없다. 이해하고 파악할 수 없는 분이다. 그분이 당신 전체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오히려 우리는 그분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신다. 차분하게, 이해할 수 있게, 쉬운 것부터 얘기를 시작하신다. 그분의 ‘말씀’이 곧 그분이다. 가장 처음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하는 것보다 그분 말씀이 계셨다고 하는 게 우리에게는 더 쉽게 다가온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지형은 목사(서울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의 평신도 신학강좌 제목이 이 번주부터 ‘말씀묵상(Lectio Divina)’으로 바뀝니다. ‘Lectio Divina’는 라틴어로 ‘거룩한 독서’란 뜻으로 ‘말씀묵상’이란 의미가 있습니다.